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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해야 할 ‘지도급 인사’ 과거 평가 |
‘항일 언론인’으로 존경을 받아온 장지연의 친일행적이 논란을 빚고 있다. 그동안 학계와 언론·시민 단체가 그의 행적에 대한 의혹을 제기해온 데 이어, 최근 민족문제연구소가 일제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1916년 12월10일치에 실린 ‘환영 하세가와 총독’이라는 장지연의 한시와 이듬해 순종과 일왕의 만남을 두고 ‘일본과 조선의 융화’라며 같은 신문에 쓴 글을 공개했다.
장지연은 1905년 일제와 을사늑약을 맺자 <황성신문>에 ‘시일야 방성대곡’(이날에 목놓아 통곡하노라)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쓴 일 등으로 ‘대쪽 언론인’이라는 평가와 함께 언론인의 사표가 돼 왔다. 특히 시일야 방성대곡은 한국 언론사에서 명논설로 치부돼 왔고, 최근에는 관계당국이 그를 ‘이달의 문화인물’ ‘이달의 독립운동가’ 등으로 뽑아 다양한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사단법인 장지연기념사업회와 한국언론재단이 ‘위암 장지연상’을 주는 등 각종 기념사업도 운영되고 있다.
한때 항일애국에 앞장선 인물이 이후 정반대의 길을 갔다면 그를 존경했던 사람이나 교과서에서 그를 만난 이들이 가치관의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나라 잃은 시기와 광복 전후 이른바 지도급 인사들의 끊임없는 변절, 이후 역사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 뒤틀린 처세술 등이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기에 역사 바로세우기와 과거사 청산 작업에서 역사 무대의 전면에 있었던 인물의 행적에 대한 평가는 철저해야 한다. 우리 내부의 허술한 과거 기록과 부적절한 평가는 민족정기와 사회정의 확립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가 2차대전 종전 뒤 나치에 부역한 언론인들의 책임 추궁에 무게를 뒀던 이유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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