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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군홧발 폭행’ 징계내용 제출 거부와 법치 |
이명박 정부가 가장 강조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법치다. 법무부는 어제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업무보고에서 내년을 ‘선진 법질서 확립’의 해로 만들겠다면서 폭력시위나 정치 목적의 불법 집단행동을 뿌리뽑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도 “국민 모두가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법질서가 생활화해야 국격이 높아지고 선진 인류국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 모두 법을 지켜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현실에선 왜곡된 법치가 판치고 있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차원의 올바른 법치가 아니라 권력의 입맛에 따라 차별적으로 행사되는 가짜 법치가 득세하고 있는 것이다. 법치를 강조할수록 냉소주의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촛불 여대생 군홧발 폭행사건’에 대한 재판은 법치의 한 주역인 경찰이 법을 얼마나 능멸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경찰은 지난해 6월 촛불시위 때 경찰에게 머리를 군홧발로 짓밟히는 등의 피해를 본 이나래(23·서울대 국악과)씨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담당 재판부의 거듭된 명령에도 불구하고 관련자 징계 내용의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징계 내용이 손해배상 책임을 가리는 핵심적인 판단자료라며 재판부가 제출을 요구하는데도 경찰은 막무가내로 버틴다. 참다 못한 재판부가 지난 8월 서증조사를 위해 경찰청을 방문하겠다고 했을 때도 경찰은 “문서 위치를 알 수 없다”며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법을 집행하는 경찰이라기보다는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조폭집단과 무엇이 다른지 모를 지경이다.
법치를 담당해야 할 기관이 법을 무시하는 것은 경찰만이 아니다. 오히려 위쪽의 법 무시 풍조가 경찰에까지 내려왔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검찰은 용산참사 재판에서 재판기록 제출을 명령받고도 3000쪽이 넘는 기록을 끝내 제출하지 않고 있다. 또한 정부는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를 비롯한 비판세력에 자의적인 법 잣대를 들이대며 ‘말살작전’을 펼치고 있다.
법의 잣대에 대해 의심이 제기되는 상태에선 아무리 법치를 외친다 해도 공염불일 뿐이다. 정부는 법치를 외치기에 앞서 자신의 잣대가 공정한지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나는 안 지켜도 되고 남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치는 법치를 가장한 독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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