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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부는 공무원노조 설립 거부할 권한 없다 |
정부가 예상대로 어제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의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노동부는 지난 4일 노조 규약의 일부 내용을 트집잡아 보완을 요구한 바 있다. 이 중에는 20일 안에 10만명이 넘는 조합원을 모아 총회를 개최하라는 어처구니없는 것까지 들어 있었다. 노조 설립을 막겠다는 의도로밖에는 볼 수 없는 생떼였다. 설립신고서 반려는 이런 생떼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노조 설립은 신고제지 허가제가 아니다. 이렇게 신고제로 규정한 것은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모여 조합을 결성하는 것이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헌법적 권리를 행사하는 데 정부의 허가를 받을 이유는 없다. 그래서 그동안은 통상 노조의 민주성이 보장되는지 등을 점검해 심각한 문제가 없는 한 신고서를 접수했다.
하지만 이번엔 전혀 달랐다. 노동부는 노조 규약에 들어 있는 ‘정치적 지위 향상과 민주사회·통일조국 건설’이라는 문구를 문제삼았다. 규약에 대한 명백한 검열이 아닐 수 없다. 규약이 말하는 ‘정치적 지위’는 관권선거를 막자는 취지에서 나온 ‘공무원의 정치활동 금지’ 규정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삭제를 요구한 것이다. 게다가 노동부는 3개 공무원노조가 통합하면서 총회를 거치지 않았다며 총회를 새로 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노조 쪽은 과거 민주공무원노조 설립 때 대의원대회 개최를 설립 절차로 인정한 노동부 자신의 답변서를 제시했으나, 노동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설립신고 절차를 악용해 전공노의 합법적인 출범을 막으려 했다. 사실상 허가제를 적용한 것이다.
이제까지 정부가 해온 행태 역시 반노조적이다. 정부는 3개 공무원노조가 전체 조합원 투표를 통해 통합 및 민주노총 가입을 결정하자 온갖 수단을 동원해 탄압해왔다. 통합 노조 초대 위원장 해임부터 노조의 정책비판을 막는 복무규정 개정 강행까지 노조를 옥죄는 수단을 다 동원했다. 이번 설립신고서 반려는 이런 탄압 과정의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전공노를 억압함으로써 그들의 노조활동 의지를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전공노는 어제 기자회견을 열어 “설립신고서 반려로 정당한 조합 활동이 움츠러들 것이라고 오판하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며 투쟁을 다짐했다. 정부가 탄압을 중단하지 않는 한 갈등과 대립은 피할 길이 없다. 게다가 전공노 문제는 민주노총 전반에 대한 정부 태도와도 얽혀 있다. 이번 설립신고서 반려는 전공노뿐 아니라 민주노총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행위인 것이다. 대립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제라도 정부는 설립신고서를 받아들임으로써 헌법 정신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노조를 적대시하는 낡은 사고방식도 버려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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