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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비리 기업인’을 모두 사면해 달라는 것인가 |
재계가 최근 사면·복권시켜 달라고 청와대에 건의한 기업인의 전체 명단이 드러났다. 이미 확인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을 비롯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등 그동안 각종 비리에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은 78명이 포함돼 있다. 대통령이 ‘법과 질서’를 외치고 있는 나라에서 비리 기업인에 대한 대규모 사면 건의가 나오고, 정부가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부터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은 최근 경제발전에 공로가 큰 기업인들에 대한 사면·복권을 청와대에 공식 건의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뒤늦게 확인된 사면 건의 대상 기업인 명단을 보면, 재계가 무슨 기준으로 이들을 선정했는지 알 수가 없다. 과거 각종 경제범죄로 처벌받은 유력 기업인들은 일단 모두 대상에 포함한 듯하다. 이렇게 무분별하게 사면 건의를 해놓고 정부를 압박하는 것이야말로 법치를 우롱하는 짓이다. 설사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위해 족쇄를 풀어준다는 차원에서 기업인 사면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분명한 원칙과 기준에 따라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특히 삼성그룹 같은 경우는 ‘삼성 특검’으로 기소돼 유죄선고를 받은 이건희 전 회장과 이학수 부회장 등 8명이나 포함돼 있다. 이른바 ‘삼성 사건’은 10여년의 우여곡절 끝에 지난 8월14일에야 최종적인 사법 판단이 내려진 사안이다. 그런데 겨우 넉달여 만에 관련자 대부분을 사면·복권시켜 달라고 청와대에 건의한 것은, 경제5단체가 아무리 재계의 이익단체라고 하더라도 평형을 잃은 처사다.
더욱 한심한 것은 재계의 무분별한 사면 건의를 법무부가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최근 국회 답변에서 “법무부 입장은 내부적으로 정해졌지만 대통령의 재가가 남아 있어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며, 일부 비리 기업인의 사면을 사실상 기정사실화했다. 법치를 강조하는 법무부가 비리 기업인들의 사면·복권에 앞장선다면 누가 법을 지키고 따르려 하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주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지도층 비리를 없애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 비리 기업인을 대거 사면한다면 이는 한 입으로 두말을 하는 셈이 된다. 말로만 비리 근절을 외칠 게 아니라 비리 기업인에 대한 사면권 행사부터 자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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