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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 전 회장 사면, 법치주의가 부끄럽다 |
차라리 법치주의를 강조하지 말아야 했다. 친서민이라는 말도 입에 올리지 않아야 했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어제 사면 결정은 이명박 대통령이 그동안 해온 원칙과 기준의 허구성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단 한 사람을 위해 마련한 특별사면의 시혜 앞에 나라의 품격도 땅에 떨어졌다. 삼권분립, 법집행의 형평성, 법 앞에 만인의 평등 등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소중한 가치들도 빛을 잃었다.
사면권이 비록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는 하지만 그 권한의 행사는 엄격하고 또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매우 제한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그 권한을 마치 주머니 속 공깃돌처럼 여겼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 대통령의 저돌적인 돌진이다. 아랍에미리트 원전 사업 수주 성사에서 비롯된 들뜬 성취감의 여세를 몰아 좌고우면하지 않고 ‘숙제’를 해치워버렸다. 사면을 발표하면서 국민들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는 몇 마디의 말을 덧붙이는 것조차 무시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허탈감에 빠진 서민들의 정서를 달래주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없었다. 사면을 두고 누가 뭐라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겠다는 오만함과 안하무인의 태도가 느껴질 뿐이다. 이래 놓고도 이 대통령은 다시 힘없는 서민들에게 ‘너희들은 법을 잘 지켜야 돼’라고 윽박지를 게 분명하다. 대통령의 그 천연덕스러운 이중잣대가 절망스럽다.
이 전 회장 사면의 언저리에는 ‘거래’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이 대통령이 밝힌 사면의 공식적 이유는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평창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 이 대통령으로서는 ‘치적 리스트’가 하나 더 추가되니 구미가 당길 만도 하겠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이 이미 두차례나 맹활약을 했는데도 연거푸 실패한 게 평창올림픽 유치다. 그가 다시 뛰어든다고 해도 결코 성공할 보장이 없다는 사실을 이 대통령도 모를 리 없다.
오히려 관심을 끄는 것은 삼성이 ‘보은’을 위해 내놓을 반대급부의 내용에 쏠린다. 오래전부터 시중에는 삼성이 정부 구미에 당길 만한 여러가지 제안을 내놓고 이 전 회장 사면을 위해 백방으로 뛴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삼성의 세종시 이전설 등도 그 가운데 하나다. 물론 삼성이 반대급부 제공을 약속했다고 말할 순 없다. 그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다. 만약 이 전 회장 사면이 거래의 결과물이라면 이는 쉽게 묵과하고 넘어가기 힘들 것이다. 사면권을 정권의 핵심 사업을 실현하기 위한 소도구로 이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무엇을 위한 사면인지 국민 모두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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