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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용산참사, 진정한 해결은 이제부터다 |
용산참사 협상이 타결됐다. 참사가 일어난 지 꼭 345일 만이다. 그동안 계절은 엄동설한에서 봄, 여름, 가을을 지나 다시 한겨울로 바뀌었다. 유족들이 뿌린 비탄의 눈물은 강을 이뤘고, 오열과 한숨은 산으로 쌓였다. 그래도 종교계를 비롯한 각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협상이 해를 넘기지 않고 타결된 것은 다행스럽다. 무엇보다 그동안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채 구천을 떠돌던 희생자들의 넋이 안식을 찾을 수 있게 돼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이 가벼워졌다.
하지만 협상 타결을 기뻐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이 사건은 우리 시대에 정부가 무엇인지, 이 사회에 최소한의 정의나 양식이 존재하는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용산참사의 본질은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나게 된 철거민들의 항의시위에 경찰이 충분한 사전대비도 없이 무모하게 진압작전을 펼치다 여섯명의 인명을 앗아간 것이다. 공권력 남용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재발방지 약속은 위정자들의 당연한 의무였다. 정부가 이런 인식 아래 유가족들에게 조금만 성의를 보였더라도 용산참사는 벌써 해결되고도 남았다. 하지만 정부는 철저한 무관심으로 유가족들을 지치게 만드는 비정한 전략을 구사했다. 참사의 책임은 온통 철거민들의 탓으로 돌려졌고, 당시 경찰 최고 책임자는 관변단체 고위 간부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어제 “이러한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데 대해 총리로서 책임을 느낀다”며 “유족 여러분께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애초 유가족 쪽에서 제기했던 정부의 사과 요구를 나름대로 수용한 결과다. 사건 발생 당시 한승수 총리가 “불법 폭력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서슬 퍼런 입장을 밝힌 데 비하면 훨씬 진전된 것이다. 하지만 ‘유감’이라는 표현이 말해주듯이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사과나 뉘우침은 엿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정부의 책임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과연 공권력 남용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참사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이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 일정이나 보상 문제 등이 타결됐다고는 하지만 이것으로 이번 사태가 끝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진상규명이다. 현재 검찰은 재판부의 명령을 거부하면서까지 수사기록 1만여쪽 가운데 3000여쪽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는 한 용산참사에 마침표를 찍을 수 없다. 제2, 제3의 용산참사를 막기 위한 법과 제도의 정비 또한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재개발·재건축을 둘러싼 갈등의 화약고는 지금도 전국 곳곳에 널려 있다. 정부의 전면적인 인식 전환을 거듭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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