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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노조법 재개정의 당위성만 확인시킨 시행령 |
노동부가 그제 입법예고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시행령’은 강행통과된 노조법의 문제점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시행령은 노사 대표와 공익위원으로 구성된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에서 노조 활동을 위한 시간(타임오프)의 한도를 정하게 하면서, 위원회에 노조 전임자 수를 제한할 권한까지 줬다. 또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노동부 장관이 선정한 공익위원들이 최종 결정을 하게 했다. 정부가 위원회를 좌우할 수 있는 장치를 곳곳에 둔 셈이다.
노조법은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하는 대신 노조 활동을 위해 근무를 면제받는 제도를 도입했다. 전임자 임금 지급을 법으로 금지한 것 자체가 노사 자율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임에도, 시행령은 한 술 더 떠 전임자 수 제한을 통해 허용된 시간도 노조 마음대로 쓰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배정된 시간을 한 명의 전임자가 쓸지, 여러 명이 나눠서 쓸지는 노조에 맡기는 게 상식이다.
타임오프 한도를 위원회 전체가 합의하지 못하면 공익위원들이 최종 결정하도록 한 것도 위원회의 취지에 어긋난다. 이 한도는 노사간 이해가 맞서는 사안이기에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합의안이 나오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래서 최종 권한을 공익위원들에게 주는 것은 정부가 결정을 좌우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시행령대로라면 위원회는 정부 방침을 관철하는 도구가 될 뿐이다.
국가의 품격을 높이자고 하면서, 정부가 이렇게 노조 활동을 일일이 규제해도 되는 건지 모를 일이다. 노사관계 선진화는 자율성 원칙이 얼마나 실천되는지 여부에 달렸다. 정부의 개입 의지는 개정된 노조법에도 드러나지만 시행령은 이를 노골화시켰다.
복수노조 창구단일화의 세부 방식도 문제다. 시행령은 노조끼리 자율적으로 단일화를 결정할 기한을 14일로 정하고 그 안에 합의가 안 되면 과반수 노조가 교섭권을 갖게 했다. 이 짧은 기간에 노조들이 합의에 도달할 방법은 소수 노조가 다수 노조의 요구에 맞추는 수밖에 없다. 창구단일화 자체가 소수 노조의 교섭권을 제한하는 문제를 안고 있는 터에, 이런 시행령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게 뻔하다.
노조법 시행령은 그나마 합의와 자율적 결정의 여지마저 봉쇄한 셈이다. 결국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해서는 노조법을 재개정하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이 더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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