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0.01.13 21:44 수정 : 2010.01.13 21:44

대법원이 사법 60년을 정리한 <역사 속의 사법부>를 냈다. 지난 정부 때부터 시작한 사법부 과거사 정리 작업이 이로써 마무리된 셈이지만, 그 내용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사법부의 조직·운영·제도·행정 등의 변천은 자세하게 다루면서도, 법원이 권력에 굴복하고 부역했던 오욕의 역사에 대해선 별다른 평가나 반성이 없다. 그나마 건조하고 소략하니, 제대로 된 과거 결산이 아니다. 2005년 취임 일성으로 사법부 과거청산을 말했던 이용훈 대법원장의 다짐과도 거리가 멀다. 이런 변질은 이명박 정부의 집권과 맞물린다. 사법부가 자기반성의 자리에서도 여전히 권력의 눈치를 살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사법부가 오로지 피해자인 양 행세한다는 점이다. 이번 ‘사법 60년사’는 박정희·전두환 시대 정보기관·군·검찰 등을 앞세운 권력의 간섭과 재판권 침해는 상세히 다루면서도, 그런 압력에 굴복했거나 권력의 의도를 살펴 법원 스스로 앞장을 섰던, 수많은 판결의 잘못은 제대로 언급하지 않았다. 따지자면 현직 판사들이 가장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인혁당 사건의 ‘사법살인’이나, 평범한 시민들이 술집·다방·택시 등에서 무심코 한 말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유신 때 긴급조치 위반 사건의 억지 판결도 모두 법원의 손을 빌려 이뤄졌다. 시국사건에서 법원이 고문·조작 호소를 외면한 채 검찰 공소장을 베낀 판결문을 내놓는 일도 흔했다. 사법 60년사에는 5공 때 대학생·노동자 등의 법정소란은 언급돼 있지만, 법원이 왜 그런 불신을 받게 됐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성찰의 흔적이 없다.

당시 법원에도 “민주주의와 사법권 독립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용기와 기개를 잃지 않은 지사들의 노고와 희생”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저항을 인사나 압력 따위로 통제하려 했던 지휘부의 ‘어두운 과거와 부끄러운 역사’ 또한 엄연하다. 소극적으로 압력과 통제에 따랐을 뿐이라고 해도, 권력 뜻대로 판결을 한 당시 법관 한사람 한사람의 책임도 결코 작지 않다. 인권 보장의 최후 보루인 법원이 인권 유린과 민주주의의 위기에 눈감는 것은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으로,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직무유기다. 지금이라도 하나하나 실명으로 그 잘잘못을 분명히 남겨야 마땅하다. 그래야만 또다른 오욕의 역사를 피할 수 있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