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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알몸투시기’ 도입, 신중해야 한다 |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이른바 알몸투시기(전신검색기)가 국내 주요 공항에도 설치될 예정이라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의 이런 방침은 너무 성급하다. 국토해양부의 설명처럼 올해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을 앞두고 항공 안전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인권침해의 소지가 분명하고 테러 방지 효과도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알몸투시기를 서둘러 도입하는 것이 능사인지는 회의적이다.
알몸투시기 도입의 문제점은 유럽 등 지구촌의 많은 나라가 이 장비 도입을 주저하고 있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지난 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민간항공 보안규정 위원회’에서는 알몸투시기 도입 의무화 방안 문제가 핵심 안건으로 다뤄졌으나 회원국들 사이의 의견 차이만 확인하는 데 그쳤다. 프랑스·이탈리아 등 찬성하는 나라도 없지 않았으나, 스페인·독일 등은 인권침해 등의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역시 알몸투시기 사용 법제화를 고려한다면서도 “인권침해, 개인정보 보호, 인체 부작용 등의 문제도 동시에 검토중”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나타냈다.
정부는 알몸투시기를 설치해도 이른바 ‘요주의 승객’에 한해서만 검색에 활용하고, 얼굴 등 신체 주요 부분은 흐릿한 이미지로 처리하겠다는 등의 사생활 보호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대책으로 과연 승객들의 수치심을 막고 인권침해 논란을 비켜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승객 편에서 보면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상태에서 알몸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미국 <시엔엔>의 보도를 보면, 알몸투시기는 그동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미지를 저장해 전송하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으며 해킹 위험에도 노출돼 있다고 한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공항에서 찍힌 알몸 이미지 파일이 인터넷 등을 통해 급속도로 유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알몸투시기가 폭발물 탐지 등에 유용한 장비는 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테러를 막는 만능 탐색기는 결코 아니다. 인권침해 논란을 빚으면서까지 굳이 무리해서 들여올 장비는 아니라는 얘기다. 미국 항공기 폭파기도 사건 이후 최근 몇몇 나라에서 알몸투시기 도입 움직임이 보이자 정부가 충분한 고려 없이 덩달아 나서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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