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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원세훈 국정원’의 탈법·탈선 행진 |
국가정보원 직원이 조계사에 압력을 가해 시민단체들의 불우이웃돕기 행사를 취소시켰다고 한다. 이웃돕기 행사 기간에 4대강 사업 중단과 <한국방송> 수신료 거부 등을 주장하는 퍼포먼스가 예정돼 있는 것을 두고, ‘반정부적인 정치집회 아니냐’고 문제삼은 모양이다. 어려운 이웃에게 라면상자와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행사까지 정보기관이 일일이 간섭하고 위협하는 행태가 참으로 황당하다.
이런 일은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에는 국정원 광주지부가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을 풍자한 설치미술 작품 <삽질 공화국>을 전시장에서 철거하도록 광주시에 압력을 행사해 전시가 한때 중단된 일이 있었다. 원세훈 국정원장이 국회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런 약속이 무색하게 올해 초에는 국정원 충남지부가 세종시 예정지인 충남 연기군의 면장·농협조합장 등에게 수정안을 지지하도록 회유한 사실이 폭로됐다. 시민사회단체 등의 자금줄 끊기에 국정원이 나선 흔적도 한둘이 아니다.
이런 짓은 모두 위법이다. 현행 국가정보원법은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엄격하게 한정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선 대공·대정부 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에 관련한 보안정보만 수집할 수 있도록 일일이 열거해 놓았다. 과거 중앙정보부와 안기부의 악령이 되살아나지 않도록 시민의 공·사생활에 대한 사찰은 아예 불가능하게끔 못을 박아둔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 국정원의 직무범위에 이웃돕기 행사나 미술전람회 등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민간 행사의 취소나 작품의 철거 따위가 국정원의 권한일 수도 없다. 이는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헌법상 권리를 침해한 것이니, 위법의 정도가 결코 가볍지 않다.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 이런 탈선은 원세훈 국정원장 취임 뒤 공공연해졌다. 요즘 국정원 직원들은 정부 부처는 물론 정치·종교·언론·기업 등 민간의 온갖 영역에서 대놓고 정보수집 활동을 벌인다. 이번처럼 이런저런 간섭도 예사로 한다. 엄연히 위법인데도 그나마 조심하던 기색조차 사라졌다. 대통령의 최측근이 국정원장이니, 대부분 정권의 입맛을 맞추는 쪽이 되기 십상이다. 실제 요즘 문제된 일들은 모두 대통령의 정치적 이해가 걸린 것들이다. 이러니 권력의 사유화, 공작정치의 부활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짓을 되풀이하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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