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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2.02 20:03 수정 : 2010.02.02 20:03

주고받은 이메일의 내용, 웹서핑을 하면서 들른 사이트와 내려받은 자료, 인터넷뱅킹의 거래 명세와 비밀번호, 메신저 대화 내용….

인터넷을 통해 전송되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가로채 감시하는 ‘패킷감청’을 통해 볼 수 있는 개인정보들이다. 그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시연회에선 이런 일이 쉽게 이뤄질 수 있음이 확인됐다. 감청 대상자의 컴퓨터와 똑같은 화면을 그대로 볼 수 있으니, 컴퓨터로 하는 일 가운데 감시 못할 게 없다. 지금 이 사설을 쓰는 순간에도 누군가가 감시하고 있을 수 있는 셈이다. 다른 이가 컴퓨터를 빌려 쓸 경우나, 같은 회선을 사용하는 다른 컴퓨터까지 고스란히 감청당할 수 있다. 개인과 그 주변의 일거수일투족은 무방비로 노출된다.

이런 패킷감청을 국가정보원 등은 이미 몇 년째 해왔다고 한다. 2008년 한 해에만도 110건의 패킷감청이 있었다. 패킷감청 장비가 이명박 정부 들어 3배 가까이 확충됐다니, 얼마나 더 늘어났고 또 늘어날지 궁금하다. 검찰은 패킷감청이 적법하다고 주장하지만, 얼토당토않다.

헌법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제17조), 통신의 비밀(제18조)을 기본권으로 규정한다. 제37조에서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법률로 제한할 때도 그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는 없다고 못박고 있다. 통신비밀보호법이 ‘통신 자유에 대한 제한은 그 대상을 한정하고 엄격한 법적 절차를 거치도록’(제1조) 한 것도 그런 취지다. 그런데 패킷감청에선 감청의 범위나 대상을 제한해 살펴보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일단 감청을 하면 불특정인을 포괄적·무차별적으로 감시하게 된다. 영장주의는 휴짓조각이 된다. 이런 상황에선 사생활과 통신 비밀의 침해는 되돌릴 수 없다. 패킷감청이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는 명백한 이유다.

패킷감청의 요건을 엄격하게 하면 되지 않느냐는 한나라당의 통비법 개정안도 이런 점에서 보면 법적 면죄부만 주는 꼴이다. 애초 패킷감청이 제한되거나 통제될 수 있는 게 아닌 만큼, 이렇게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국정원 등이 국민을 마음대로 감시할 수 있는 길을 터줘선 안 된다. 법을 개정하려면 패킷감청의 절대 금지를 명문화하고 그 위반을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게 옳다. 아울러 이 기술의 상업화 역시 오용 가능성을 막을 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될 때까지 유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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