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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형사통합망, 위험한 실험이다 |
법무부가 어제 형사사법절차 전산화촉진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 법대로라면 오는 5월부터 ‘형사사법 정보시스템’(형사통합망)이 가동될 것이다. 정부는 이 제도가 신속·공정·투명한 형사사법절차의 실현과 대국민 서비스 개선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다.
이런 식의 대규모 정보집적이 필요한지부터 의문이다. 지금도 경찰의 수사기록 등은 검찰 등이 정당한 절차를 거쳐 볼 수 있다. 고소사건 진행 경과 등도 이미 전산화돼 각 형사사법업무 처리기관의 홈페이지를 통해 국민에게 제공된다. 꼭 전자화를 해야 ‘신속·투명·공정한 형사사법절차’가 실현될 리도 없다. 오히려 형사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기관 간의 견제와 감시를 통해 더 잘 달성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형사 절차를 전자화함으로써 사법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주장도 있지만, 위·변조 가능성 등으로 전자문서가 형사소송의 증거로 인정되지도 않는 마당에선 설득력이 떨어진다. 기술적·법적 안전장치도 갖추지 않은 채 수사기관의 편의만을 위해 졸속으로 전자화를 앞세우는 게 아니냐는 지적은 당연하다.
효용은 보잘것없는 반면, 예상되는 폐해는 심각하다. 법에는 검찰·경찰 말고 국가정보원·국세청 등도 형사통합망에 모인 정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일정한 절차를 거쳐야 하긴 하지만 경찰 단계에서 종결된 내사·수사기록도 검찰이 통째로 들여다볼 수 있다. 흩어져 있는 개인정보가 모이면 이를 입체적으로 구성해 개인의 전반적인 삶을 샅샅이 알 수 있다. 그만큼 국가의 통제와 감시가 쉬워지는 것이다. 지금도 이런저런 일로 형사 관련 조사를 받는 국민이 한 해 수백만명이라니, 장차 전 국민이 그런 감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사생활의 비밀과 인격권이 침해되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 신체의 자유가 억압될 수 있다. 이로 인한 민주주의의 왜곡은 계량하기조차 어렵다.
정보집적의 부작용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외부의 해킹 위험과 그 피해는 더 커진다. 검찰 등이 사건을 예단해 억울한 피의자를 양산할 수 있고, 정보기관이 짜깁기로 괜한 사건을 조작할 위험도 있다.
형사통합망 관련 법과 시행령 안은 이런 걱정을 다 불식하지 못하고 있다. 납득할 만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법 시행을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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