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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당의 투표 내용까지 들여다보겠다는 경찰 |
수사에도 지켜야 할 금도가 있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수사 목적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경찰이 전교조와 전공노 조합원들의 민주노동당 가입 의혹을 조사하겠다며 민노당 누리집 서버를 압수수색한 것은 전형적인 과잉수사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경찰이 밝힌 압수수색 이유는 민노당 누리집 서버를 뒤져 민노당 당원으로 의심받고 있는 전교조 교사 등의 투표기록을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경찰이 정당의 공식 사이트에 들어가 투표 내용을 들여다보겠다는 발상부터가 놀랍다. 민노당이 자체 개발한 투표 사이트에는 그동안 각종 투표와 설문조사에 참여한 10만여명의 인적사항 등이 남아 있다고 한다. 경찰은 당원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에 한정해 투표 기록을 확인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정당의 내밀한 투표 결과를 경찰에게 노출해야 할 정당의 처지에서는 매우 민감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민노당 쪽이 “공권력에 의한 야당 사찰이자 정치 탄압”이라고 반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경찰이 그동안 보여온 수사행태도 문제점투성이다. 경찰은 민노당 당원으로 의심되는 교사 등의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해 민노당 투표 사이트에 접속해 당원 여부를 확인했다고 한다. 경찰로서는 나름대로 꾀를 내어 수사를 한 것일지는 몰라도 위법성 논란이 불가피하다. 수사기관이라고 해도 타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웹 사이트의 로그인 등에 사용할 경우 주민등록법 위반죄에 해당한다는 게 대다수 형법학자의 견해다. 경찰이 압수수색에 목을 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위법하게 확보한 증거에 뒤늦게 합법성을 부여하기 위한 안간힘으로 보인다. 이미 계좌추적을 통해 민노당에 당비를 납부한 공무원 명단까지 확보했다고 밝힌 이상 굳이 이들을 처벌하려면 압수수색까지 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경찰의 이번 수사는 애초부터 전형적인 별건 수사, 먼지털기식 수사라는 비판이 무성했다. 전주지방법원이 교사 시국선언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리자 일부 교사·공무원들의 민노당 활동을 꼬투리 잡아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의도가 너무 역력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표적을 정해놓고 끼워 맞추기 수사를 하다 보니 갖가지 무리수가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됐으면 경찰은 치졸하기 짝이 없는 표적수사를 걷어치우기 바란다.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민생치안에 힘을 쏟기에도 너무 바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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