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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 대통령, ‘파벌 보스’로 갈등만 키울 건가 |
국가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를 꼽는다면 갈등 해소와 통합 능력일 터이다. 특히 이념·지역·계층간 심각한 갈등 양상을 빚어온 우리나라에서 갈등 조정자로서 대통령의 역할과 책임은 비길 데 없이 막중하다. 대통령에게 여야의 구분을 넘어서는 초정파적 지도자상을 기대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면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어느 쪽인가. 갈등의 해소자인가 아니면 증폭자인가. 유감스럽게도 후자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구시대적 통제와 억압의 정치가 이어지면서 대립과 분열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사회 어느 구석을 둘러봐도 시비와 다툼이 끊이지 않는 곳이 없다. 그 한복판에는 어김없이 이 대통령이 있다.
최근 불거진 이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간의 막가는 대결 양상도 이 대통령이 직접 갈등을 키운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 사태는 이 대통령이 어제 “더 이상 서로 말꼬리를 잡지 말고 이것으로 마무리됐으면 한다”며 한발 물러섬으로써 일단 한 고비를 넘긴 분위기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와중에 이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은 여야를 초월한 지도자상은 고사하고 한나라당 내 친이계 파벌 보스 정도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양쪽의 잘잘못을 굳이 따져봐도 애초 강도론 등 점잖지 못한 표현을 사용해 박 전 대표에게 선제공격을 가한 것은 이 대통령이었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박 의원’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해 가며 “본인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고 날선 공격을 가한 것도 이 대통령의 뜻이었음을 모를 사람이 없다. 결국 이 대통령은 여권 내 갈등만 더욱 증폭시켜 놓은 채 별다른 소득도 없이 후퇴하고 만 셈이다.
게다가 이 대통령에게, 갈등을 확산시킬 줄만 알았지 해소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준비도 대책도 없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세종시 수정안 문제만 해도 애초 자신의 공약까지 파기하며 평지풍파를 일으킬 때는 뭔가 비장의 대책이라도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이 길고 어두운 터널을 어떻게 빠져나가겠다는 건지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걱정스러울 정도다. 마침 오늘부터 설 연휴가 시작된다. 이 기간에 이 대통령은 심사숙고해서 결단을 내리길 바란다. 온 나라가 세종시 갈등의 늪에 빠져 끝없이 허우적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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