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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공교육 혁신의 단초 보여주는 ‘행복한 성적표’ |
일부 교사들이 시작한 ‘행복한 성적표’ 작성 운동은 공교육 혁신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교육운동 단체인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소속 교사들이 지난해부터 시범적으로 실시한 이 운동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행복한 성적표란 기존 성적표와 달리 교사가 학생들의 수업과정을 면밀히 관찰해 서술형으로 기록한 것이다. 교사들은 숫자로 표시된 성적에선 나타나지 않는, 수업과정에서 확인한 학생들의 태도와 노력 그리고 장단점까지 세심하게 정성껏 평가한다. 이런 평가는 학생들의 학습 만족도를 높여 학습의욕을 자극하고, 학부모들의 학교에 대한 신뢰감을 높여주는 구실을 한다. 이 성적표를 받아본 뒤 ‘진짜 학교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학부모들의 반응은 이 운동의 의미와 가능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전에도 행복한 성적표처럼 결과가 아닌 과정에 대한 평가를 하자는 논의는 있었다. 노무현 정권 당시 교육혁신위원회가 입시제도 개혁의 일환으로 도입하려고 했던 교육이력철이 그런 사례다. 하지만 교사들에 대한 불신과 업무부담 가중을 우려하는 교사들의 반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행복한 성적표 운동에 참여한 교사들도 지금 교육여건에서 이런 제도를 전면적으로 시행하긴 어렵다고 인정한다. 학생 하나하나를 면밀히 관찰해 평가하는 일은 많은 시간과 집중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운동을 시작한 교사들은 제도와 환경이 다 갖춰질 때까지 기다릴 정도로 우리 교육현실이 한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공교육이 사교육에 눌려 질식당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방과후 학교에 대한 예산지원처럼 공교육 현장마저 사교육장화하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확대시켜온 것이다.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면 교사·학생·학부모 간의 신뢰회복을 통해 공교육에 대한 믿음을 복원해야 한다. 행복한 성적표는 이런 노력의 출발선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운동에 대한 교사 단위, 학교 단위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정책당국이 교사들의 자발적 헌신을 제도적 차원에서 뒷받침해주는 일이다. 교사들에게 자신들의 수업을 기획하고 평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 책무성을 높이고 과중한 잡무를 줄여줌으로써 학생 지도에 헌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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