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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출구전략, 손 놓고 있을 때 아니다 |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시중은행에 빌려주는 단기자금의 금리인 재할인율을 현행 연 0.5%에서 0.75%로 올렸다. 지난달 중국이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인상한 데 이어 나온 조처다. 두 나라 모두 아직 정책금리는 손대지 않아 본격적인 긴축에 들어섰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세계 금융위기 이후 대폭 완화된 통화정책을 다시 조이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음은 분명하다.
이번 재할인율 인상으로 미국 금융시장이 당장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에도 시중은행은 유동성이 풍부해 연준 자금을 빌려다 쓰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조처는 당장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려는 것이라기보다 시중에 유동성이 과도하게 풀릴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연준이 예상보다 일찍 재할인율을 올린 데서 보듯 미국 경기는 견조한 회복세에 들어섰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시중은행이 유동성을 과잉공급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번 재할인율 인상은 이런 부작용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선제적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통화정책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정책당국자들은 미국과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고 선을 긋는다. 하지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시중에 풍부한 자금이 풀려 있고, 경기도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은 마찬가지다. 우리도 과잉유동성으로 인한 부작용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들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를 넘어서고, 자산거품도 꺼지지 않고 있다. 시중에 풀린 통화의 유통 속도도 서서히 회복되는 중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올해 상반기까지는 금리 인상 등 이른바 ‘출구전략’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물론 두바이 사태나 유럽국가들의 재정위기 등 불안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통화정책은 때를 놓치면 엄청난 후유증을 겪는다. 금리 인상 등 출구전략은 최소 6개월 앞의 경기 추세를 고려해 시행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시장 과열 등 자산거품 현상이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것은 정부의 뒤늦은 통화정책 탓이 크다. 성장률 높이기에만 매달려 출구전략을 미룰 경우 우리 경제의 체질 자체가 취약해질 수도 있다. 본격적인 출구전략을 당장 시행하지는 않더라도 통화정책의 방향을 바꾸고 이를 시장에 전달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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