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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민주화운동 정신 계승’ 결의의 뼈아픈 질책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 8개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들이 어제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4·19혁명 50돌, 5·18민주화운동 30돌을 맞는 올해를 ‘민주화운동 정신을 계승하는 해’로 선포하고 여러 사업을 함께 펼치기로 했다고 한다. 역사를 박제화하는 걸 거부하고 그 정신을 새롭게 이어가자는 의지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유효하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 현실이 오죽했으면 그런 슬로건이 나왔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
보수세력 가운데는 민주화를 현실과 동떨어진 정치운동으로 폄하하는 이들이 있지만 그건 역사 왜곡이다. 우리 현대사를 관통해온 민주화운동은 모든 사람이 진정 사람 대접 받는 사회를 만들자는 목표 아래 전개돼 왔다. 누구든 제 뜻과 의지를 펼칠 수 있는 정치·경제·사회적 권리를 보장하자는 것이 민주화운동의 핵심이다. 피상적인 정치구호가 아니라 우리 삶 전반의 문제인 것이다. 사실 민주화운동의 취지를 폄하하는 이들 자신도 민주화의 수혜자 집단이었다.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정부는 최소한의 절차와 원칙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설정한 의제를 밀어붙인다. 어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발표한 이명박 정부 2년 평가 설문조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설문에 응한 전문가의 67%가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고, 이들이 첫째로 꼽은 문제는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행태’였다. 게다가 경제를 살리겠다며 출범한 정부 아래서 빈부 격차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경제 민주화’라는 말은 이제 철 지난 구호로 치부된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야당 책임도 크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부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민주화의 본래 의미를 확대·계승할 생활밀착형 정책 대안을 내놓지도 못했다. 이 점에서는 진보·개혁 정치세력도 내세울 게 없긴 마찬가지다.
정부는 왜 민주화운동 정신을 되살리자는 움직임이 다시 활발해지는지 겸허하게 반성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번 결의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앞장섰다는 6·3항쟁의 동지회도 참가했다. 누구보다 먼저 경청해야 할 사람은 바로 이 대통령이다. 야당도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되살릴 책임을 무겁게 느껴야 한다. 정치세력이 기대를 저버릴 때 국민이 직접 행동에 나서는 민주화운동의 전통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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