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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세종시 국민투표 아예 꿈도 꾸지 말길 |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중대 결단’을 내릴 것이라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말이 전해지면서 국민투표 문제가 다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한나라당 내 의견대립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청와대가 결국 최후의 수단인 국민투표를 결심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중대한 판단착오일 뿐 아니라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첫째, 국민투표는 여당이 당론 조정에 실패할 경우 대체수단으로 활용하라고 만들어놓은 제도가 아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나라당 내 중진협의체 등을 통한 논의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면” 등의 말로 당론 조정을 압박했다. 여당이 당론을 정리하면 국민투표를 안 하고, 이견 조율에 실패하면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얘기인데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세종시 문제는 국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게 대다수 헌법학자의 견해다. 한나라당 내 친이계 일부 의원들은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는 헌법 72조를 들어 “세종시 원안에 따른 ‘수도 분할’은 국가 안위와 직결되는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자의적 법해석이요 견강부회일 뿐이다. 이미 헌법재판소는 2005년 11월24일 행정도시특별법 헌법소원을 각하하면서 부처 이전은 수도 분할이 아니라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셋째, 국민투표의 나쁜 선례는 두고두고 국가운영에 큰 부담과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세종시 문제 정도를 국민투표에 부친다면 앞으로 여론이 팽팽히 맞서는 사안은 모두 국민투표로 결정해야 옳기 때문이다. 당장 언론관련법이나 4대강 개발 문제 등도 국민투표로 결정하는 게 마땅하다. 세종시 문제는 꼼수를 부리지 말고 정상적인 국회 처리 절차에 따라 매듭짓는 게 순리다.
넷째, 국민투표가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국민의 찬반 의견을 정확히 묻는 수단이 될지도 의문이다. 세종시 국민투표는 필연적으로 정권의 진퇴를 결정짓는 신임투표로 성격이 변질될 수밖에 없다. 세종시 수정안에는 반대하지만 정권퇴진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찬성표를 던지는 사람도 나오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애초 의도와 전혀 다른 성격의 투표 결과로 세종시의 장래를 결정하는 것은 난센스다.
마지막으로, 국민투표는 국론 분열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나라를 더욱 극심한 혼란과 분열에 몰아넣을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세종시가 국민투표 대상이 되느냐부터 논쟁거리인 상황에서 이를 강행할 경우 갈등과 대립이 더욱 격화될 것은 자명한 이치다. 국민투표의 부작용과 위험성이 이처럼 심각한데도 청와대는 굳이 국민투표를 고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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