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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세계 여성의 날이 부끄러운 한국 여성 |
어제는 102돌을 맞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1908년 미국에서 평등권을 요구하며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벌인 시위를 원점으로 삼아 해마다 좀더 양성 평등한 사회 실현을 다짐하는 이날, 한국의 여성들은 오히려 우울했다. 여성들의 지위가 나아지기는커녕 갈수록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올해 들어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처음으로 남성을 앞지른 것이나 주요 임용시험에서 여성들이 약진하고 있는 일처럼 긍정적 신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여성들의 분투·노력을 뒷받침해 평등사회를 앞당기려는 정책적 노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사회적 편견 역시 완강하다. 특히 금융위기는 대다수 여성의 삶에 커다란 상흔을 남겼다.
단적인 예를 그제 노동부가 발표한 ‘2009년 여성고용동향 분석’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9.2%로 2005년 이후 처음으로 50% 이하로 떨어졌다. 취업자 수도 지난해에 비해 10만명 이상 줄었다. 그나마도 상당수는 불안정한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다.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낙태를 문제삼는 것 역시 우리 여성들이 직면한 새로운 문제다. 법과 현실의 괴리를 메울 수 있는 여건도 조성하지 않은 채 여성들을 범법자로 몰아가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무시한 채 국가가 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이 정책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역시 이 정권의 천박한 여성인식의 산물이다.
여성이 사회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정도를 재는 여성권한척도에서도 우리나라는 저만치 뒤에 처져 있다. 유엔개발계획이 발표한 ‘2009 인간개발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여성권한척도는 조사대상 109개 나라 가운데 61위에 머문다. 여성 의원 비율이 아프리카 가봉과 같은 81위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렇듯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악화일로를 걷는 데는 이명박 정권의 탓이 크다. 이 정권은 여성계의 오랜 노력으로 도입된 성인지 예산제를 허울만 남긴 것에서 보듯이 여성문제에 무심하다. 그러나 성 평등사회 구현은 정의의 문제를 넘어서는 우리 사회의 생존전략이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저출산 고령화도 여성의 참여 없인 극복할 수 없다. 이제라도 좀더 근원적인 고민을 바탕으로 평등사회를 앞당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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