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총체적 부실 드러낸 여중생 사건 수사 |
부산 여중생 이아무개양 납치·살해 사건을 다루는 경찰의 모습을 보면 한심한 생각을 넘어 분노와 울화가 치민다. 실종신고 접수에서부터 시작해 수색-검거-자백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평가할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다. 지레짐작, 건성건성, 뒷북치기, 판단착오, 책임 떠넘기기 등 부실수사의 백화점이다. 우리 경찰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다.
경찰은 어제 피의자 김길태씨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고 의기양양하게 발표했다. 경찰로서는 한시름 놓았다고 생각하겠지만 결코 자랑할 형편은 못 되는 것 같다. 자백 내용을 들여다볼수록 오히려 경찰의 초동수사 실패에 대한 아쉬움이 더욱 커진다. 김씨의 진술대로라면 살해와 사체 유기 등 모든 범행이 이양 집 반경 50m 안에서 이뤄졌다. 경찰이 실종신고를 접수한 뒤 주변 빈집들만 제대로 수색했어도 이양의 희생을 막거나, 최소한 사건을 조기에 해결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주검 유기 장면을 본 목격자가 뒤늦게 나타난 것도 곱씹어볼 대목이다. 이 목격자는 경찰이 김씨 행방을 계속 찾지 못하자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미뤘다고 한다. 경찰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어느 수준인지 잘 보여준다.
김씨가 자신의 범행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경찰로서는 앞으로 갈 길이 멀다. 아직 범행을 뒷받침할 변변한 물증 하나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게다가 김씨의 진술은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도 많다. 만취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기에는 주검 은폐 과정이 너무나 치밀하다. 그런데도 경찰은 “진술에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고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 게다가 경찰은 수사의 기본이라 할 현장 보전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김씨를 붙잡은 뒤 ‘무당집에서 일주일 동안 기거했다’는 진술을 받고서도 범행 현장을 방치해 체모나 발자국 등 주요 증거들을 놓쳐버린 게 경찰이다. 경찰이 이번 사건을 제대로 마무리지을 수나 있을지 걱정되는 이유다.
이번 사건은 잘못된 경찰 수사의 반면교사로 길이길이 남길 필요가 있다.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고 나면 초기 대응 과정부터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낱낱이 점검해야 한다. 그래서 잘못의 원인을 규명하고 확고한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