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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치적 들춰내기 의도 의심되는 대통령기록관장 인선 |
정부가 역대 대통령의 기록을 보존·관리하는 대통령기록관장에 현직 청와대 행정관을 임명했다. 대통령 기록관리 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정치보복 성격의 들춰내기를 꾀하려 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대통령기록관장의 임기를 5년으로 정해, 후임 정부 기간에 정치적 독립이 유지되도록 했다. 후임 대통령이 전임자의 기록을 악용하는 것을 막는 임무가 기록관장한테 부여된 것이다. 대통령기록관에는 당장 공개하면 국가적 혼란 등이 염려되지만 훗날 역사의 평가에 필요한 자료들이 보호대상으로 지정돼 있다. 그런데 정부는 전임 관장을 기록물 유출 혐의로 지난해말 직권면직시킨 뒤 후임으로 ‘현직 대통령의 사람’을 앉혔다. 법률에 따르면 기록관장이 사전 승인할 경우 보호기간에 있는 기록물도 열람과 사본 제작, 자료 제출이 가능하다. 정부가 전임 정부의 비공개 기록에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상황이 된 셈이다.
청와대는 “공무원이 정치적 성향과 색깔을 갖고 있다고 해서 중립을 지켜야 할 위치에서 자기 색깔대로 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정권 초기 대통령기록물 문제를 갖고 노무현 전 대통령 쪽을 강하게 압박한 전례가 있다. 사소한 절차상 문제점을 트집잡아 ‘대통령기록물 사저 유출’이라며 검찰 수사로까지 몰고갔던 데서는 정치보복 의도가 느껴졌다. 또 한나라당에선 전직 대통령 기록물을 현직 대통령이 열람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하는 방안도 한때 거론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참모로 활동했던 사람을 기록관장에 앉혔으니, 전임 대통령의 기록물 정보를 빼내기 위한 의도적 발령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제도는 ‘기록을 남기지 않는 나라’라는 문제제기에 따라 노무현 정부 시절 도입했다. 미국은 1978년 관련 법률을 제정한 뒤 후임 정부가 전임 정부의 비공개 자료를 열람하자고 나선 사례가 없다. 정부는 기록문화와 정치문화 등 모든 면에서 후진적이며 부끄러운 이번 인사를 하루빨리 철회하기 바란다. 그러지 않는다면 이 대통령이 나중에 기록관에 넘길 자신의 기록물을 제대로 작성하고 있는지도 의심받게 된다.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인물을 인선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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