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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국은행, ‘청와대 남대문출장소’로 전락하려나 |
김중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가 신임 한국은행 총재로 내정됐다. 청와대는 김 대사가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폭넓은 식견과 경륜을 갖추어 한은 총재로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표적 관변학자로서 이명박 정부 초대 경제수석까지 지낸 그는 중앙은행 총재로서 적합하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내정자 자신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런 우려는 벌써 현실화하고 있다. 그는 총재로 내정되자마자 “정책을 최종적으로 정하는 것은 대통령 몫”이라고 말해 앞으로 대통령 의중을 충실히 따를 것임을 노골적으로 밝혔다. 한국은행을 행정부의 한 부처쯤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말이다.
물론 한국은행도 대한민국이란 국가 안에 있다. 당연히 정부와의 정책 협의가 필요하다. 상황에 따라서는 정부 정책에 협조할 수도 있다. 하지만 통화정책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중앙은행이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은 한국은행이 아니라 청와대를 바라보게 된다. 중앙은행의 존재 의미가 사라지고, 한은 총재는 대통령 지시를 받는 각료 정도로 전락하게 된다.
다음 달 임기가 끝나는 금융통화위원 2명이 친정부 인사로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한은 독립성 훼손 우려를 더욱 깊게 한다.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의 총재에다 정부 입맛에 맞는 금통위원들이 통화정책을 결정하게 되면 사실상 청와대의 지침에 따를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한은 독립성 논란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은 더 가관이다. 청와대는 한국은행법 조문을 들어 한국은행은 ‘독립성’이 아니라 ‘자주성’이 존중돼야 한다고 해석했다. 말장난이다. 문제는 ‘독립’이냐 ‘자주’냐의 표현이 아니다. 국민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통화신용정책이 중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수립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 독립성 개념까지 친절하게 풀이해주는 마당에 통화정책이 중립적으로 수립되길 기대하긴 힘들다.
정부가 중앙은행을 장악하면 금리 인상을 최대한 늦추면서 경기확장 정책을 지속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산거품 등 예상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이를 견제해야 할 중앙은행이 오히려 이에 협조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가 끝나면 그만이지만 그 폐해는 온 국민이 떠안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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