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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법원을 정권의 통제 아래 두겠다는 한나라당 |
한나라당이 그제 발표한 법원제도 개선안은 ‘법원규제안’ 내지 ‘사법부 예속화안’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개선안은 법관 인사는 물론 양형까지 행정부가 간섭하겠다는 위헌적 발상을 담고 있다. 그동안 판결을 통해 권력의 질주에 적잖게 제동을 걸어온 사법부를 아예 자신의 발 아래 두겠다는 섬뜩한 의도가 묻어난다.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삼권분립의 원칙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 태도다. 그 발상의 오만함과 저돌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법관인사위원회에 법무부 장관이 추천한 인사 등을 끼워넣어 의결기구로 만들자는 안부터 보자. 이는 바꿔 말해 사법부의 주요 보직에 정권이 원하는 판사들을 앉힐 수 있는 길을 공식적으로 열겠다는 뜻이다.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는 판사에게는 대놓고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 이런 제도 아래서는 법관들이 재판을 할 때 인사의 목줄을 쥐고 있는 외부 인사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현재와 같은 서열 위주 법관 승진 구조나 폐쇄적인 인사시스템은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그 방식이 사법부 독립성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 돼서는 결코 안 된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방안은 개선이 아니라 엄청난 개악이다.
대법원 산하의 양형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바꾸겠다는 발상은 더욱 노골적으로 삼권분립을 거부한다. 형 선고는 본질적으로 사법의 영역이다. 그러려면 차라리 검찰이 수사부터 기소, 판결에 이르기까지 모든 절차를 맡아서 하지 뭣하러 사법부를 두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대법관 수를 현재의 14명에서 24명으로 증원하겠다는 구상도 음험하다. 대법관들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해소해야 할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하지만 대법관 한 명이 처리하는 사건 수를 고등법원 판사 수준으로 낮추려면 10명이 아니라 30~40명 이상 늘려도 어림없다.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 등 그동안 검토돼온 다양한 방안이 있는데도 굳이 대법관 수를 늘리자고 나선 이유는 자명하다. 새로 생길 열 자리에 정권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대법관들을 임명하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대법원을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음모적 발상이다. 한나라당은 위헌적 요소로 가득 찬 법원제도 개선안을 밀어붙이기에 앞서 헌법 공부부터 다시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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