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이건희 회장 복귀,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 |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어제 삼성전자 회장으로 전격 복귀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시작된 ‘삼성사태’에 책임지고 물러난 지 23개월 만이다. 삼성 쪽은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글로벌 사업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이 회장의 경륜과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의 복귀는 명분도 약할뿐더러 절차상으로도 부적절하다.
삼성 쪽은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 명분으로 ‘도요타 사태’를 들었다. 이 사태로 위기를 느껴 경영 복귀를 간청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최근 도요타가 한순간에 추락한 것은 외부와의 소통 부재와 내부 의사 결정의 폐쇄성 때문이었다. 따라서 도요타 사태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외부와의 소통을 더 원활히 하고, 국민의 비판과 견제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를 먼저 갖춰야 했다. 그런데 거꾸로 총수 1인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황제경영’ 체제로 되돌아감으로써 도요타와 같은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졌다.
이 전 회장이 직접 발표한 경영쇄신안을 번복하고 지배구조를 과거로 되돌려버린 것은 더 큰 문제다. 이 전 회장은 2008년 4월 삼성 사태에 책임을 지고 경영일선 퇴진, 전략기획실 해체, 계열사 독립 경영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사면복권 조처가 있은 지 석달 만에 이를 완전히 뒤집었다. 이렇게 상황 변화에 따라 말을 수시로 바꾸는 재벌총수가 국내외에서 얼마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하는 과정이나 절차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사실상 경영 전권을 행사할 회장에 복귀하면서 주주들의 의견을 묻는 절차를 완전히 무시했다. 지난주말 열린 삼성전자 주총에서는 그의 복귀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합당한 법적 절차 없이 권한만 있고 책임은 지지 않는 회장 자리에 오른 것이다.
오너 경영의 장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경영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총수가 과감한 사업조정이나 투자를 결정함으로써 위기를 타개해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정해진 법적 테두리 안에서 회사 안팎의 동의와 지지가 있을 때 가능하다. 지금같이 일방적으로 황제경영 체제로 되돌아가면 국민적 반감만 더 커질 뿐 아니라 오너 경영의 장점이 발휘되길 기대할 수도 없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