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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원청업체, 하청노동자에 대한 책임 회피하지 말아야 |
실질적인 영향력을 지닌 원청업체는 하청업체의 부당노동행위도 책임져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지난 2003년 해고당한 하청업체 노조원들이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노동위원회가 받아준 것은 정당한 처분이라고 판결했다. 고용관계가 없더라도 실질적인 권한이나 능력을 가진 원청업체는 하청업체의 부당노동행위에 책임이 있다는 의미다. 도급으로 위장한 경우 원청업체를 사용자로 본다는 판결은 있었지만,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원청업체의 책임을 물은 대법원 판결은 처음이다.
이 판결은 간접고용을 통해 책임을 회피하는 게 더는 용인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간접고용이 일상화하면서 하청노동자들이 큰 희생을 치르는 현실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특히 이번 판결은 비정규직의 기본권 보장에 진전을 이루는 계기가 될 걸로 노동계는 보고 있다. 하청노동자가 원청업체에 교섭을 요구할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간접고용의 폐해는 요즘 가장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월 공개된 노동부의 ‘사내 하도급 현황’을 보면, 종업원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들의 21.9%가 사내하청이었다. 하청노동자는 조선업과 같은 대형 제조업에 가장 많지만 서비스업 등 다른 분야로도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한 노동자들이 곳곳에 널려 있는 셈이다. 이런 노동자들은 해고나 고용 상황 악화에 맞서 싸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명목상의 고용주들은 교섭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원청업체에서 결정된 것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기 일쑤다. 하지만 원청업체를 찾아가면 “왜 고용주도 아닌 우리에게 그러느냐”는 말만 돌아온다. 이렇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가운데 노동자들만 골병이 든다.
비정규직은 단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일에 대한 책임감, 업무 혁신 의지 따위는 생길 수 없다. 이는 기업으로서도 큰 손실임을 최근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 회사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과도한 비정규직 의존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젠 한국 기업들도 비정규직 축소·폐지가 기업과 노동자 모두를 위한 일임을 인정할 때가 됐다. 정부 또한 비정규직의 여건 개선과 정규직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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