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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억지·압박 일삼는 검찰, 부끄럽지도 않은가 |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5만달러 수수의혹 사건 공판에서 검찰이 연일 무리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법 절차에 어긋나는 주장을 막무가내로 펴는가 하면, 증인을 겨냥한 듯한 압박도 서슴지 않고 있다. 애초 기소가 무리였음이 드러나자 다급해서 그랬겠지만, 이미 법률가의 금도를 한참 넘었다.
가장 어처구니없는 것은 검찰 공소사실과 배치되는 증언을 했다고 위증죄 기소까지 을러대는 일이다. 검찰은 지난 18일 공판에서 한 전 총리가 총리공관 오찬장에서 돈을 챙기기는 어렵다는 취지의 증언을 한 전직 총리실 경호원을 따로 불러 위증 혐의로 조사를 벌였다. 검찰 단계에서 한 진술이 법정에서 선서를 하고 한 진술과 다르다고 문제를 삼은 꼴이다. 검찰 조사 때의 진술을 그대로 유지하라는 압박이기도 하다. 다른 경호원들의 증언이 예정돼 있던 어제는 검찰이 문제된 경호원을 위증죄로 기소할 방침이라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나왔고, 검찰도 이를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다른 말을 하면 다시 불러 혼찌검을 내겠다는 식으로 비치니, 부담을 느끼지 않을 증인이 없을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정보기관이나 길거리 폭력배의 행태와 다를 게 뭐 있느냐는 말이 나오게도 됐다.
이런 식의 수사와 기소는 법적으로도 옳지 않다. 위증죄 수사는 적어도 1심의 재판 결과가 나온 뒤 하는 것이 당연하다. 검찰 공소사실이 옳은지, 문제된 경호원의 법정 증언이 옳은지에 대해선 아직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법정 증언이 잘못이었다는 진술을 받아낸다 해도 판례상 이번 재판의 증거로 인정될 수도 없다. 그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검찰이 1심 재판이 진행중인 지금 대놓고 조사를 하고 기소까지 거론하는 것은 압박용 말고는 달리 설명할 수 없다. 명백한 수사권 남용이다. 신빙성과 증거능력에서 마땅히 우위에 두어야 할 법정 증언보다 수사단계의 진술을 앞세우려 한다는 점에선 공판중심주의에도 어긋나고, 형사소송법의 기본에도 맞지 않는다.
검찰은 이미 애초의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 공판 과정에선 증인에게 사실이 아닌 의견을 묻는가 하면, 법정에 제출되지도 않은 검찰 내부자료를 근거로 증인을 추궁하는 따위 형사소송법에 어긋나는 행동도 여럿 보였다. 실체적 진실을 찾아내지도 못했을뿐더러 절차적 정의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이러고도 부끄럽지 않다면 더는 기대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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