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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4.21 20:11 수정 : 2010.04.21 21:16

새터민으로 위장 입국해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를 살해하려 한 혐의로 북한인 2명이 그제 구속됐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소속으로 지난해 11월 김영철 정찰총국장으로부터 직접 황씨 살해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황 전 비서는 1997년 한국에 도착한 뒤 줄곧 북한 체제를 정면으로 비판해왔다. 북한 지도부의 핵심 인사였던 그의 발언은 국내외에서 상당히 무게 있게 받아들여졌다. 북한으로선 자기 체제의 아픈 곳을 찌르는 그가 그동안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이런 황씨를 망명 13년 만인 지금 와서 살해하려 했다니, 그 배경과 의도가 궁금해진다.

검찰과 정보당국 설명대로라면, 황씨 암살 지시는 그의 대외활동이 활발해진 때와 맞물린다. 황씨는 지난해 강연 등을 통해 북한의 3세 세습구도 등을 강하게 비난했다. 북한의 헌법 개정이 후계 세습을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고, 북한의 생명줄인 중국과의 동맹관계를 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황씨의 발언 수위가 높아지면서 북한이 그즈음 본격화한 세습 후계구도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했다고 정보당국은 보는 모양이다. 이런 이유로 87살의 망명자를 암살하려 간첩까지 보냈다면, 냉전시기에나 있었던 시대착오적 행태임이 분명하다.

걱정되는 것은 이번 일이 대결의 시대로 퇴행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1968년 1·21사태나 1983년 아웅산 국립묘지 폭탄테러 등 크고 작은 사건으로 남북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우리 사회는 정치·군사적 대결태세뿐 아니라 민주주의 후퇴 등 적잖은 희생을 치렀다. 사회적 혼란과 불안도 뒤따랐다. 북한 역시 경제적 지체와 국제적 고립을 겪어야 했다. 이번 사건의 배경에 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가 있다면 그 무모함을 비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이번 사건엔 석연찮은 대목도 없지 않다. 암살을 하려 했다면 무기는 무엇인지, 경호원들로 둘러싸인 황씨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은 있었는지 등 밝혀내야 할 의문이 여럿이다. 1, 2월에 검거된 이들의 구속 시점이 공교롭게 <문화방송> ‘피디수첩’의 ‘검사 향응 리스트 파문’ 보도와 겹친 것도 여론의 관심을 돌리려 한 게 아니냐는 따위 오해를 불러올 만하다. 사실이라면 이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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