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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정일 방중’, 중국에 항의할 일인가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관련해 신각수 외교통상부 1차관이 그제 장신썬 주한 중국대사를 불러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도 어제 취임 인사차 방문한 장 대사와의 면담 장면을 이례적으로 언론에 10분 남짓이나 공개하며 “중국의 책임있는 역할”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 때문에 배석한 중국대사관 관계자가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항의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고 한다.
김 위원장의 갑작스런 방중 소식에 정부가 느꼈을 당혹감과 불편한 심기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지난번 한-중 정상회담 당시 후진타오 주석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의 방중 계획을 미리 귀띔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섭섭함도 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외교부의 이런 처사는 국제적 관례를 무시한 과민반응이라는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아직은 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한 정확한 조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정부는 벌써부터 북한 소행을 기정사실로 만들어 북에 대한 보복심리를 확산시키고 있으나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다르다. ‘북한이 아니면 누가 했겠느냐’는 식의 정서가 국내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외교무대에서는 통할 수 없다. 외교부의 이번 조처는 국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도움이 됐을지라도 외교적으로는 분명히 무분별한 행동이다.
한국 정부의 이런 태도는 천안함 사건에 관한 중국의 입장을 ‘우리 편한 대로’ 해석하는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사실 중국과 북한의 오랜 관계를 고려할 때 중국의 철저한 중간자적 태도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지난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나온 후진타오 주석의 발언을 마치 우리 정부에 대한 지지 입장을 표명한 것처럼 확대해석하는 등 사실과 다른 인식을 보여왔다. 외교부의 이번 행동은 중국 정부가 우리 입맛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투정이나 부리는 것으로 국제사회에 비칠 것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소용돌이는 더욱 격심해지고 있다. 북한 핵문제와 6자회담 등 당면한 외교 현안을 놓고 미·중·일·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태도에도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고 있다. 어느 때보다 우리 정부의 차분하고 냉정한 태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외교적 대응 실패로 국제사회에서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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