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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경협기업 목조르기’ 당장 중단해야 |
정부가 대북 위탁가공 업체들한테 제품 추가 생산을 하지 말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상 사업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 그러잖아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계속 위축돼온 남북 경협이 막바지 궁지에 몰린 모습이다. 이대로 간다면 마지막 남은 대규모 경협 사업인 개성공단마저도 존폐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조처는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위탁가공 업체의 목을 조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정부는 아무런 공식 문서도 없이 기업을 압박한다니 기가 막힌다. 남쪽 기업이 북쪽에 원·부자재와 설비의 일부 또는 전부를 제공해 제품을 만드는 위탁가공은 노태우 정부 때 시작된 경협 형태다. 이후 남북관계가 험악할 때도 굳건히 이어져온 이들 사업이 이제 일방적인 정부 정책의 희생물이 될 판이다. 그동안 정부를 믿고 사업을 꾸려온 업체 수백곳이 한꺼번에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태도는 대북정책의 큰 흐름에서도 타당하지 않다. 정부는 북쪽의 대남 강경조처들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설령 그럴 필요가 있더라도 아무 잘못이 없는 기업을 제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남북 현안은 정부간 대화를 통해 해법을 찾아나가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물론 대화가 잘되게 하려면 기존 접근방식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정책 기조를 바꿔나가야 한다. 지금처럼 대결적 대북정책을 밀어붙이려 해서는 냉전 시절과 같은 갈등과 충돌이 되풀이될 뿐이다.
정부가 천안함 참사와 관련해 이번 조처를 취하는 것이라면 더 큰 문제다. 참사 원인이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거니와 북쪽 소행이라 하더라도 경협 단절이 대책이 될 수는 없다. 지난 2년여 동안 남북관계가 악화하면서 정부는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렛대를 거의 잃은 상태다. 그나마 남은 경협마저 끊겨서는 대북 압박은커녕 벌거벗은 적대적 관계로 가기가 쉽다. 천안함 참사와 같은 일이 재발할 가능성이 더 커지는 길이다.
그동안 경협 기업들은 갖은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남북관계 진전의 밑거름이 됐으며 관계가 나쁠 때에는 안전판 구실을 했다. 이들 기업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대북 접근은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정부는 경협기업 목조르기 등 천안함 참사를 활용해 대결적 대북정책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당장 중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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