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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14 22:57 수정 : 2010.05.14 22:57

한국전쟁 발발 60년이다. 전쟁은 남쪽에서만 200만여명의 사상자를 냈고, 삶의 터전을 남김없이 파괴했다. 그뿐 아니라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고 주권을 유보시키는 준전시 냉전체제를 탄생시켰다.

다시 그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한편에선 대결과 적대를 유인하고, 다른 한편에선 이를 빌미로 냉전의 복원을 꾀한다. 20년여 동안 조심스럽게 쌓아올린 남북간 신뢰의 토대나 화해·협력의 성과는 남김없이 해체되고 무너진다. 평화를 거부하는 이들이 거짓과 왜곡의 주술로써 냉전의 망령을 무덤 속에서 불러내고 있다.

부활하는 대결과 적대

22년 전 신생 <한겨레>에는 두 개의 꿈이 있었다.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가 그것이다. 정통성 없는 정권들이 북쪽의 위협을 빌미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했으니 두 개의 꿈은 따로 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반도에서 민주주의는 남북 평화로 나아가는 디딤돌이었고, 남북의 화해·협력은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조건이었다. 온갖 억압 속에서도 이 꿈을 한사코 버리지 않았던 국민들의 정성으로 탄생한 것이 한겨레였으니, 민주주의와 평화를 향한 행진은 한겨레의 숙명이었다.

한겨레가 창간과 함께 방북취재를 계획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군사정권이 통제된 정보를 통해 불신과 공포를 조장하고 대결과 적대를 고착시키는 상황에서 가장 먼저 드러내야 할 것은 북쪽의 진실이었다. 진실만이 조작된 불신과 공포의 망령을 걷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공포의 망령을 앞세워 인권과 주권을 유린하고 찬탈한 정권엔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결국 평화를 향한 멀고 먼 장정의 작은 출발에 불과했던 방북취재는 정권에 의해 봉쇄당했다. 리영희 고문 등 방북취재를 계획했던 이들은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당했다.

그렇다고 한겨레의 노력이 무위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 노력은 소설가 황석영씨의 방북을 시작으로, 문익환 목사와 대학생 임수경씨의 북한 방문으로 이어져, 민간 차원의 광범위한 평화·통일 운동으로 확산됐다. 이들은 언론이 해야 할 몫의 일을 했다. 황씨는 방북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펴내, 북쪽의 사람들이 남쪽에서 알고 있듯이 늑대도 야수도 아니었음을 증거했다. 상층부는 체제 안정을 바랄 뿐이고, 인민들은 남쪽과 마찬가지로 평화와 안정을 원하는 사람이었다. 이들에게서 비롯된 화해와 평화의 물결을 노태우 정부도 거스를 순 없었다. 남북 당국 사이에 기본합의서가 채택됐고, 낮은 수준이나마 경협이 시작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이를 심화발전시킨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을 이끌어내, 적대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밑돌을 놓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화해·협력 그리고 평화를 위한 주춧돌이 남김없이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신뢰의 기반이 되었던 인도적 지원은 오래전 끊겼고, 화해·협력의 상징인 금강산 관광도 사망 선고만 남겨두고 있다. 당국자간 대화는 물론 민간 차원의 교류도 사실상 봉쇄됐다. 이 정권의 뿌리라 할 노태우 정부 때 시작한 위탁가공 교역마저 중단 위기에 처했다. 유사시 남북관계를 관리할 수 있는 모든 지렛대가 사라진 것이다. 외세에 맡겨지게 됐으니, 한반도의 불안정성은 그만큼 커졌다. 고립무원의 남쪽은 오로지 미국의 발목만 잡게 됐다.


이런 대결과 압박 정책 속에서 터진 것이 천안함 참사다. 그것이 사고에 의한 것이든, 정부가 추정하는 대로 북한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든, 천안함은 북쪽에 대한 달라진 대응 속에서 참변을 당했다. 선후관계가 이런데도 이 정권은 천안함 참사를 오히려 실패한 압박 정책을 합리화하고 봉쇄와 대결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관련 정보를 통제하고 왜곡된 해석을 강요하는 전통적 방식으로 준전시체제의 복원을 꾀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안보총괄점검회의에서 “불과 50㎞ 바깥에 북한이 대한민국을 겨냥하고 있는데 우리는 크게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며 안보불감증을 타박했다. 세상의 군사력은 적대세력을 겨냥한 것이지 우호세력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 평화는 무력이 아니라 신뢰 증진을 통해 이뤄진다.

진실은 평화의 씨앗이다

평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즐겨 만들어내는 것이 악마라는 환상이다. 때론 의도된 적대행위로 도발을 유도해 대상을 악마화하기까지 한다. 이라크전쟁도, 베트남전쟁도 정보 왜곡으로 상대를 악마화함으로써 저질러진 전쟁이었다.

따라서 적대와 충돌로써 이득을 취하려는 이들의 기도를 막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을 알리는 것이다. 진실만이 천안함 사고와 같은 참사의 반복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한겨레>가 창간 22돌을 맞아 다시 초심을 새롭게 다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난무하는 거짓과 왜곡 속에서 오로지 진실만을 찾아내고 드러내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임을 약속한다. 진실이야말로 적대의 망령을 털어내고 평화를 싹틔우는 씨앗임을 다시 한번 명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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