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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인권 후진국’의 또다른 역주행, 불심검문 강화 |
국가인권위원회가 경찰의 불심검문권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에 대해 큰 우려를 표하며 수정 의견을 냈다. 국제앰네스티는 한국에서 “국민에 대한 과도한 처벌과 권력집단에 대한 과도한 불처벌” 등 정치참여와 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선진국으로 향해 간다는 나라가 인권에선 여전히 후진국임이 또다시 드러난 것이다.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국회 상임위까지 통과했다는 경찰관직무집행법안은 인권 시계를 한참 뒤로 돌린 내용이다. 경찰이 압수수색영장 없이 길을 가는 시민의 가방이나 차량 등을 수색할 수 있게 했고, 기존 법의 ‘답변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는 대목을 삭제해 불심검문에 대한 거부권조차 없앴다. 개정안은 경찰이 시민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가족의 전화번호를 확인하거나 지문 채취 등을 통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길도 터놓았다. 헌법이 정한 영장주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일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체의 자유와 사생활의 비밀 등을 침해할 소지가 더 커졌다는 점에서 위헌 가능성이 크다.
개정안의 다른 내용도 불심검문의 남용을 제한할 수 있는 조항들은 쏙 뺀 채 경찰의 권한만 강화하는 것들이다. 경찰이 시민의 소지품과 차량을 수색할 수 있도록 한 조항에는 단서를 달아 이를 제한했다지만 그 내용이 추상적이고 포괄적이어서 경찰의 재량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경찰의 편의를 위해서라면 인권은 희생해도 좋다는 생각에서 나온 법안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법안 추진 이유라는 현행범 긴급체포 등 사회적 위해의 방지 필요성도 현행법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니, 공안 목적에서 비롯된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개정안은 제대로 된 공론화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실제 법안 추진은 경찰청 등 정부에서 했으면서도 의원입법 형식으로 발의되는 바람에 입법예고나 공청회도 없이 상임위를 통과했다. 인권위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한 뒤에야 뒤늦게 의견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국민의 기본권을 크게 제한하는 법안을 이런 식으로 도둑질하듯 처리하는 것부터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야는 인권 침해와 위헌 가능성이 분명한 이 개정안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굳이 법을 개정할 필요성이 있다 하더라도 더 많은 논의를 거쳐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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