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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운찬 총리, 지금이 떠날 때다 |
여당이 6·2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청와대와 내각, 한나라당의 대규모 인적 물갈이가 불가피하게 됐다. 이미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사의를 표명했다. 당·정·청 최고수뇌부 중에서는 정운찬 총리 한 사람만 남았다. 하지만 정 총리는 자리에 대한 미련이 많아 보인다. 그는 어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선거에 나타난 국민의 뜻을 받들어 안정적인 국정운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해 자진사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했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는 열심히 일했고 또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지만 그 실상이 아직 국민에게 전달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해 선거 참패의 원인을 홍보 부족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린 빗나간 현실인식이 아닐 수 없다.
정 총리는 ‘세종시 총리’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세종시 수정안 관철에 모든 것을 걸었다. 취임 이후 8개월 사이에 충청지역을 방문한 횟수만 해도 무려 12차례에 이른다. 국정 전반을 통할해야 할 국무총리가 이렇게 한 사안에만 매달린 것부터가 정상이 아니다. 세종시와 관련한 정 총리의 어록도 두꺼운 책 한권이 모자랄 정도다.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을 겨냥한 “잘못된 약속조차도 막 지키려는 여자”라는 발언을 비롯해 “세종시는 정치인들이 표를 얻기 위해 만든 아이디어” 따위의 ‘소신’을 수없이 토해냈다.
정 총리가 물러나야 할 이유가 단지 이번 선거로 세종시 수정안이 폐기될 운명에 처한 데 있는 것만은 아니다. 국무총리로서 그의 자질과 능력에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정 총리는 취임 당시 “필요하다면 대통령에게 할 말을 하겠다”고 했지만, 그동안 대통령에게 소신있는 발언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국정운영 전반에 걸쳐 균형자 구실을 하리라는 애초의 기대도 저버렸다. 내각 전반을 통할하면서 각 부처의 업무를 능숙하게 조정했다는 평가도 들려오지 않는다. 대신 끊임없는 말실수, 총리 자리에 걸맞지 않은 가벼운 처신으로 구설에 오르내렸다. 어느 면에서는 여권에도 부담스런 존재가 돼버린 게 지금의 정 총리 모습이다.
공직자는 들어갈 때보다 오히려 나올 때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정 총리가 새겨들을 말이다. 괜히 자리에 연연하다가 만신창이가 돼 물러나느니 지금 떠나는 게 그나마 나은 길임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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