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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끝까지 실망 안겨준 정운찬 총리의 담화 |
정운찬 총리는 어제 세종시 수정안의 국회 부결에 대해 “정략적 이해관계가 국익에 우선했던 대표적인 사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책임지겠다”는 말도 했으나, 연설의 대부분은 정치권을 비판하고 자신의 소신이 옳았음을 강변하는 데 할애했다. 수정안 부결 이후 정부가 추진할 구체적 정책 추진 방향에 대한 설명도 전혀 없었다. 과연 어떤 의도와 목적에서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발표했는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정 총리가 밝힌 ‘책임지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아리송하다. 누구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책임지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국민적 합의를 뒤집고 평지돌풍을 일으킨 데 대해 책임지겠다는 뜻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수정안으로 야기된 분열과 혼란, 국력의 엄청난 낭비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뜻도 아니다. 내각 책임자로서 대통령을 향해 고개를 숙였는지는 몰라도 국민들을 향해선 여전히 뻣뻣하다.
그가 연설에서 드러낸 아집과 독선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는 세종시 수정안이 “국민 과반수의 지지를 등에 업은 옳은 정책”이었는데도 “정략적 이해관계” 때문에 좌절됐다고 했다. 이쯤 되면 “그 대통령에 그 총리”라는 탄식을 피하기 어렵다. 세종시 뒤집기 문제에 매몰돼 각종 국정현안을 등한히 한 점이나, 자신의 잦은 말실수와 일탈로 국민들의 가슴에 상처를 준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는 정치권 한쪽에서 분석하듯이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과 각을 세움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모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말마따나 앞으로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달라지면 정치적 활로가 열린다고 여길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큰 착각이다.
오히려 그는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할 수 있는 여러 번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버렸다. 학자 시절의 초심을 잃지 않는 곧은 지식인, 대통령에게도 직언할 수 있는 용기있는 행정가, 국정운영의 균형자 구실을 하는 양식있는 정치인으로서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놓쳤다. 그의 말대로 세종시 수정안 추진을 자신이 “짊어져야 할 시대적 십자가”로 여겨 “다른 무엇보다도 세종시 문제에 매달”렸던 탓이 크다. 게다가 아직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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