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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구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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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집값을 잡겠다고 외치지만 사석에서 정책 당국자들을 만나 보면 인식의 괴리를 절감한다. 대표적인 게 부동산에 대한 시장주의적 접근이다. 이들은 땅과 집 같은 실물자산의 가격 상승을 자연스런 현상으로 간주한다. 주거 환경이 개선되고, 주택이 고급화됨에 따라 부가가치가 높아졌으니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투다. 특정 지역의 중대형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는 것도 수요 공급의 불일치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으로 본다. 이들은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직접 개입해 가격을 통제하면 반드시 ‘시장의 보복’을 받게 된다고 경고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주택시장에서 발을 빼려 한다. 이미 중대형 아파트값은 정부의 정책 대상이 아니라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최근 급등하고 있는 강남과 분당 등 특정지역의 집값에 대해서도 ‘국지적인 현상’이고, 그들만의 ‘돈질’을 하고 있다며 내버려 두라고 한다. 정부는 서민층의 주거 안정에만 주력하면 되지, ‘배 아픈 서민’들의 요구에 밀려 강남의 중대형 아파트값까지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에 대해서도 대단히 관용적이다. 돈이란 수익을 좇아 흐르기 마련이고, 지금 같은 저금리 상황에서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는 것은 당연한데 이를 어떻게 막을 수 있겠냐고 말한다. 투자와 투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도 뒤따른다. 그러다 보니 주택정책의 목표도 늘 집값 ‘안정’에만 맴돈다. ‘안정’이란 말에는 아무리 많이 오른 집값이라도 그 수준은 용인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폭등한 집값을 일정 수준으로 끌어내리겠다는 의사나 의지는 전혀 없다. 2003년 하반기에 내놓은 ‘10·29 종합대책’의 목표는 그저 ‘안정’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부동산 대책을 논의하는 자세는 지극히 표피적이다. 연일 회의를 열어 대책을 마련한다고 부산을 떨지만 대책은 그들의 삶과는 무관한, 죽어 있는 숫자의 조합일 뿐이다. 집값 폭등으로 인한 좌절, 박탈, 상실감 등은 서민들만의 몫이다. 오히려 이런 감정들은 균형 잡힌 정책을 만드는 데 걸림돌로 간주된다.
이런 상황에서 집값이 잡힐 리가 없다. 정부 대책은 늘 오른 집값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뒤 잠시 묶어두는 정도에 그친다. 마치 ‘집값이여, 지금 이대로만’이 정부의 목표처럼 보인다. 이는 정부 스스로 부동산 거품이 터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다루면서 거품을 더 키우는 꼴이다.
정책 당국자들은 이런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구체적인 대책 마련은 그 다음이다. 우리 경제에서 부동산 문제는 경제정책의 시작이자 끝이다. 집값 폭등이 초래하는 폐해를 생각하면 부동산 정책을 어떤 경제 정책보다 앞에 놔야 한다. 집값도 장기적으로 지금보다 10~20%는 끌어내리겠다는 확실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 부동산을 시장논리에 일방적으로 맡기는 것도 경계할 일이다. 부동산은 우리 사회의 공공재이지 시장에서 자유롭게 거래되는 일반 상품이 아니다. 오늘도 대통령과 장관들이 둘러앉아, 현란한 수치를 동원해가며 집값 폭등의 원인을 분석하고 개별 대책들의 효과에 대해 갑론을박할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문제에 대한 인식 전환 없이는 제2, 3의 ‘10·29 대책’밖에 안 나온다.
정석구 경제부 기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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