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피디수첩’ 소송 정운천씨가 ‘국가’라도 되는가 |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민동석 전 정책관이 <문화방송> ‘피디수첩’을 상대로 낸 명예훼손 소송에, 엉뚱하게 농식품부가 억대의 변호사 수임 예산을 책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농식품부는 재판에 증인으로 나선 직원 2명을 위한 법률자문료라고 주장하지만 옹색한 변명이다. 법정에서 사실관계만 진술하면 되는 증인이 따로 돈을 내어 변호사 자문까지 받는 것은 법조계 인사들도 듣지 못한 일이라고 한다. 개인 자격으로 증인이 되는 직원을 위해 정부가 법률 자문료 수천만원씩을 들인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이런 짓이 누구를 돕기 위한 것인지는 자명하다. 농식품부는 변명의 끝에 “명예훼손 소송의 핵심 쟁점이 농식품부의 정책 및 업무수행”에 관한 것이라면서 피디수첩 쪽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고 밝혔다. 정운천·민동석 두 사람의 개인 소송을 지원하기 위해 농식품부가 조직적으로 나섰으며, 변호사 수임은 이를 위한 것이었음을 털어놓은 셈이다. 이런 법률자문 결과가 실제 소송에서 두 사람을 위해 활용됐을 가능성도 높다고 봐야 한다. 이쯤 되면 정부가 국가예산으로 개인의 소송 비용을 편법 지원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는 횡령에 해당한다. 법인·단체의 대표라 해도 개인 명의로 소송을 냈으면 그 비용은 개인이 치러야 한다. 회삿돈으로 변호사 수임료 등 소송 비용을 치르면 횡령이라는 판례가 이미 여럿 있다. 마찬가지로 전직 장관이라는 이유로 부처 예산을 집행해 지원했다면 횡령의 혐의를 벗기 어렵다. 국가예산을 목적 범위를 벗어나 남용했다는 점에선 다른 법률적 책임도 추궁해야 마땅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정부 내부에서 문제되지 않고 넘어갔는지 의아하다.
농식품부는 이것 말고도 피디수첩의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 보도와 관련해 형사재판, 정정보도 청구소송, 헌법소원 등 서너 건에 걸쳐 모두 3억8천여만원의 소송 비용을 들였다고 한다. 국가소송의 변호사 수임료를 1천만원으로 한정하는 정부 내부 지침이나 관행은 예사로 무시됐다. 비판 보도를 위축시키려 국가예산을 과도하게 쓴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행태다. 이번 일처럼 누가 봐도 엄연한 잘못을 버젓이 저지른 것도 비판적 보도를 ‘손보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됐을 터이다. 누가 이를 용인하고 부추겼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