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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시성 ‘친서민 행보’는 이제 그만 |
이명박 대통령이 ‘친서민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엊그제는 서민들에게 무담보 신용대출을 해주는 미소금융 사업장을 방문하고 재래시장에 들러 만두를 먹으며 상인들과 어울렸다. 이유야 어떻든 대통령이 직접 현장에 나가 서민들의 삶을 피부로 느껴보려 하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에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친서민 행보는 주로 정치적인 수세에 몰렸을 때 강화되곤 했다. 6·2 지방선거에서 여권이 참패한 뒤 친서민 기조를 부쩍 강조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선거를 통해 확인된 민심을 받아들여 친서민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걸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친서민 행보가 이처럼 정치적 상황 변화에 따른 것이라면 여건이 달라질 경우 언제든 뒤바뀔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대통령의 근본적인 인식 변화가 요구되는 이유다.
되풀이되는 대통령의 즉흥적인 행태도 문제다. 이 대통령은 대기업 계열 캐피털회사들의 대출금리가 연 40~50%나 된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라며 고금리를 시정하도록 했다고 한다. 캐피털회사의 고금리 실태를 이제야 알았다는 것도 문제지만 전후 사정도 면밀히 따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지시를 내린 건 더 문제다. 담당 부처는 부랴부랴 실태 조사에 나서 금리 인하를 유도하겠다고 하지만 캐피털회사의 고금리 구조가 그렇게 말 한마디로 해소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친서민 정책의 하나로 대기업의 불공정 하도급 실태를 강력히 단속하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는 워낙 뿌리가 깊고 구조적이어서 집중 단속 한두 번 한다고 시정될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일회성 단속에 그칠 게 아니라 치밀하고 구체적인 장기계획을 세워 꾸준히 밀고 나가야 한다. 대기업-중소기업 하도급 관계가 정상화되면 우리 경제구조 자체가 혁신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다. 이 정부가 과연 그럴 의지와 자세가 돼 있는지 묻고 싶다.
대통령이 재래시장 한두 번 더 간다고 서민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 진정으로 서민을 위한다면 기업형 슈퍼(SSM) 규제 강화를 당장 입법화하고, 기초생활수급자 등 빈곤층에 대한 복지예산을 확충하는 등 구체적인 정책으로 보여줘야 한다. 말로는 친서민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취약계층에 대한 쌀값 지원 예산까지 삭감하는 행태가 계속되는 한 친서민 행보에 대한 불신만 커져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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