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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개각 보도유예 , 어느 나라 청와대이고 기자단인가 |
청와대와 출입기자단이 최근 개각 발표 때까지 관련 보도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개각은 정국 운영 방향과 밀접하게 얽혀 있어 많은 국민이 관심을 기울이는 사안이다. 미리 보도한다고 해서 공익을 해치는 것도 아니다. 개각 관련 보도유예(엠바고)는 기껏해야 깜짝 발표의 효과를 높여주는 것밖에 안 된다. 결과적으로 청와대와 출입기자단이 ‘개각 이벤트’를 합작하는 꼴이다. 청와대가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청와대의 정당성 없는 보도유예 요청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월엔 한-미 정상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 논의에 대해 미리 보도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를 <한겨레> 등 일부 언론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논란이 됐다. 청와대가 국가적 사안에 대한 공개 논의를 아예 막으려 한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되풀이되는 청와대의 보도유예 요청은 삐뚤어진 언론관을 잘 보여준다. 논의 과정에선 침묵하고 있다가 결정한 뒤에 발표만 그대로 받아쓰는 게 언론이라는 생각을 드러낸 것이다. 언론의 본분이 권력을 비판·견제하고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 것임을 생각하면 비정상을 떠나 독재적이다. 청와대가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언론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청와대 탓만 할 순 없다. 보도유예는 언론이 수용해야만 성립한다. 청와대 못잖게 이를 수용한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 어떻게 보면 언론의 관행적인 보도유예 수용이 더 큰 문제일 수도 있다. 언론이 사안의 성격을 엄밀히 따지고 꼭 필요한 때만 보도유예에 협조한다면, 청와대도 보도유예 요청을 남발하지 못할 것이다. 권력과의 관계에 대한 언론의 반성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 스스로 지키려고 노력할 때만 보장된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요즘 시대에 보도통제가 얼마나 유효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리비아와의 외교갈등이 외국 언론을 통해 거꾸로 국내에 소개됨으로써 보도유예가 무너진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정부와 출입기자단이 침묵한다고 해서 그만인 건 아니다. 정부와 언론은 이제 보도통제가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자칫 불신만 부를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공익은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 위에서 지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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