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정 추기경, 언제까지 권위 위해 공의 외면하려는가 |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사제단)의 대표인 전종훈 신부가 3년째 안식년을 이어가게 됐다. 안식년을 받을 때가 아니었던 2008년 8월 안식년 발령을 받은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3년 연속 보직 해임은 한국 천주교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전 신부가 왜 이런 처분을 받게 됐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는 사제단 대표로서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를 주선했고, 2008년에는 촛불집회 시국미사에 나섰다. 그가 속한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은 당시 그에게 ‘삼성 문제에 나서지 말라’는 뜻을 전했으며, 사제단의 촛불집회 주관도 마뜩잖아했다고 한다. 사제 인사는 교구장의 고유 권한이니, 전 신부가 3년째 사목활동을 못하게 된 것은 추기경의 뜻으로 봐도 무방할 터이다.
사제 인사가 교회 내부의 일이긴 하다. 사제에겐 순명의 의무도 있다. 하지만 전 신부에 대한 처분이 교회 밖 세상일에서 비롯됐다면 그 처분이 공의에 맞는지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짐작대로 삼성의 불의를 고발하고 권력의 횡포에 저항한 사제단의 활동 탓에 이런 가혹한 처분을 내렸다면, 세상의 불의를 외면하라고 강요하는 게 된다.
실제로 서울대교구는 침묵을 요구했다. 지난해 두번째 안식년 발령을 앞두고선 전 신부에게 “(추기경이) 삼성 문제를 건드리지 말라고 했는데 왜 했느냐”는 힐책과 함께, 사제단 대표에서 물러나면 본당에 자리를 주겠다는 제의를 했다고 한다. 올해는 본당이 아닌 다른 선교공동체로 갈 것을 제안했다. 전 신부는 이를 모두 거부했고, 그 때문에 또 안식년을 명령받았다. 이런 조처가 교회법의 권위를 위한 것일 뿐 사제단의 활동을 무력화하고 교회의 사회참여를 막고자 하는 것이 아니길 빈다. 세상의 불의에 눈감고 입 닫도록 한다면 불의의 공범이 될 터이다. 불의를 외면하는 교회는 세상의 소금도, 그리스도의 몸도 될 수 없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두루 사랑과 존경을 받은 것은, 추기경이라는 높은 자리 때문이 아니라 불의와 부정을 외면하지 않고 낮은 곳에서 사랑을 실천했던 그의 삶 때문이었다. 한국 천주교회가 단단하게 자리를 잡게 된 것도 권력과 한 몸뚱이가 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갈수록 심해지는 서울대교구의 폐쇄적 권위주의는 이제 세상의 근심이 되고 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