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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그릇된 방위비분담금 전용 논의, 공론에 부쳐 원칙 세우자 |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의 평택 이전사업 전용 시한을 2013년 이후로 연기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의 주둔경비 가운데 한국이 제공하는 비용이다. 방위비 분담금을 미군기지 이전사업에 전용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데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연기한 대가의 하나라는 의혹도 나오는 상황이다.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6월30일 김태영 국방부 장관을 만나 이런 요구를 전달했다고 한다. 주한미군 기지 이전은 본래, 용산기지는 한국이, 2사단은 미국이 부담하기로 한 게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 합의사항이다. 그런데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에서 1조1193억원을 몰래 덜어 기지 이전에 전용하다가 2008년에 문제가 됐다. 그때 두 나라 군사당국은 잘못을 바로잡기는커녕 기왕의 불법전용을 기정사실화하고, 2013년까지 전용 기간을 연장하기로 합의했다. 미군 쪽이 이제 이 시한까지 늦춰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면 늦게라도 바로잡아야 마땅한데, 애초 잘못을 더욱 굳히고 키우는 꼴이다. 대단히 그릇된 행태다. 받아들일 요구가 결코 아니다.
더구나 샤프 사령관의 요청 시점은 6월27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요구에 따라 전작권 환수 연기를 발표한 지 사흘 뒤다. 당시 청와대는 두 나라 사이에 대가와 관련한 논의는 일절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움직임을 보면 당시 정부 발표의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미국 쪽이 전작권과 관련해 한국 요구사항을 들어줬다며 당당하게 청구서를 들이미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은 한-미 군사동맹이 잘못돼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자체 예산으로 충당해야 할 기지 이전 사업에 우리 국민의 혈세를 쓰도록 전용한 것부터가 옳지 않았다. 미국이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더 키워나가자고 하는데도, 전작권 환수에 애면글면 매달린 탓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는 한심하다.
국방부 쪽은 어제 관련 보도를 일단 부인했다. 하지만 그렇게 덮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국방부는 무엇보다 한-미 군사당국 간에 논의된 내용을 낱낱이 공개해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전면적으로 공론화해야 한다. 그래야 무너진 원칙을 다시 세우고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지금처럼 감추려 하다가는 문제가 더 커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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