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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란 은행 업무정지 검토, 과연 타당한가 |
정부가 이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에 대해 업무정지를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이 핵 프로그램 개발 의혹과 관련해 이란에 대한 제재 동참을 압박한 데 따른 것이다. 국제관계의 여러 측면과 우리 법령에 위반되는지 여부 등을 냉정하게 따지는 자세가 요구되는 때다.
유엔은 2006년 핵 개발 의혹과 관련해 이란 사데라트은행을 제재 대상으로 결정했으며,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이 이 은행과 거래를 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6월 검사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외국은행 국내지점에 대해 금융위기 등 경제적인 이유가 아닌 정치적인 이유로 영업 정지나 지점 폐쇄 등의 조처를 취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란 은행끼리 지급결제 등의 거래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일단 중요한 것은 위반 사항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또 얼마나 중대한 사안인지를 가리는 일이다. 그 결과 유엔이 제재 대상으로 삼은 핵심 사안과 직접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업무 정지까지 검토해야 할지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거래의 연속성과 신뢰성을 생명으로 하는 금융회사에 장기간의 영업 정지 조처를 내리는 것은 사실상 사형선고와 같다. 근거 없이 과중한 제재를 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국제 금융시장에서 우리의 신뢰성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무리한 금융제재로 인한 피해는 당장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금융거래의 안정성을 해칠 뿐 아니라 개방경제를 지향하는 우리 정책기조와도 맞지 않는다. 이란의 보복조처 외에 다른 중동권 국가들의 반응도 우려된다. 유엔 결의에 따라 제재가 불가피하다 할지라도 우리 법령에 따른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이란을 포함한 중동권 나라들은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제재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무리하게 금융감독권을 행사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란은 세계 석유·가스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나라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이란을 비롯한 중동 지역에서 미국이나 유럽 나라들과 달리 비교적 호감을 얻어왔다. 이는 우리가 지켜가야 할 중요한 자산이다. 이번 사안에서 냉정을 잃는 모습을 보인다면 회복하기 어려운 불신감을 사게 될 것이다.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외교로는 우리 국익을 지켜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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