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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밀실 재협상’ 조짐 보이는 한-미 FTA |
이달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재협상이 아니라 실무협의라고 하지만 형식이 어떻든 사실상 재협상임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은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까지 추가 양보를 얻어낸다는 목표로 우리나라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의 공세는 생각보다 거세다. 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초 “오바마 대통령이 서울에 가기 전 자동차와 쇠고기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합의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론 커크 무역대표와 맥스 보커스 상원 재무위원장 등도 줄기차게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달 23일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해 ‘더 많은 양보’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까지 보도했다.
미국의 요구는 분명하다. 첫째는 연령과 부위 제한 없는 전면적인 쇠고기 수입 개방이다. 둘째는 자동차 분야에서 배기량 대신 연비 등을 기준으로 한 세제를 채택하지 말 것을 포함해 각종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미 합의한 자유무역협정 문안도 얻는 것보다 내주는 것이 훨씬 많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런 마당에 추가 양보까지 한다면 차라리 협정 자체를 백지화하는 게 나을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정부의 이중적 태도다. 겉으로는 “재협상은 없다”고 외치면서 협정 본문에 손을 대지 않고 부속서한이나 부속협정 형태로 양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예 부속문서도 없이 미국 쪽 요구를 들어줄 수도 있다. 이 경우 밀실 협상이 이뤄지기가 쉽다. 한덕수 주미대사가 말한 ‘창조적 해법’이란 것도 이런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 초기에 밀실 협상을 하는 바람에 많은 손해를 봤다. 쇠고기 수입 개방, 스크린쿼터 축소 등 4대 선결조건을 일방적으로 들어줬고, 협정에서도 수십가지 국내법 개정을 약속하는 등 불리한 요건을 강요받았다. 지금도 국민들은 재협상이 언제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전혀 모르고 있다. 기한은 두달밖에 안 남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공식적인 요구사항을 전달받지 못했다”는 무책임한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충분한 여론 수렴과 엄격한 검증 절차 없이 밀실 협상이 진행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또다시 국민의 눈을 속이려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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