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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한-일 관계의 현황 |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사이의 정상회담이 근래에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냉랭한 분위기에서 어제 열렸다. 각자의 사정이 있었다 해도, 일정과 장소 발표가 막판까지 난항을 거듭한 것은 현재 한-일 관계의 취약성을 반영한다.
두 정상은 이견의 폭이 가장 큰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솔직한 의견 교환을 했다고 한다. 두 정상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등에 대해 흉금을 터놓고 얘기를 한 것 자체는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역사인식을 시정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이상, 회동의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한-일 관계가 올 들어 급격히 나빠진 배경에는 독도 문제, 역사교과서 개악 등이 있지만, 문제의 근원은 역시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상징되는 일본 집권층의 노골적 우경화에 있다. 고이즈미 총리가 참배 명목을 어떤 식으로 합리화하든, 피해자 처지에서는 과거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가 일본 국내에서조차 일고 있는 신중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담에서 참배 포기를 공언하지 않은 것은 대단히 유감스럽다. 총리가 잘못된 고집을 꺾지 않는데 어떻게 각료들의 망언이 사라지기를 기대하겠는가? 앞으로 제3의 추도시설 건립을 검토하겠다고 했는데, 변화 조짐으로 보기는 어렵다.
내일은 전후 두 나라 관계를 정상화한 한-일 기본조약이 조인된 지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햇수로만 보면 기념행사라도 있을 만한 해지만, 전혀 그럴 계제가 아니다. 조약의 전문에 식민지 지배에 대한 언급이나 사죄 표현이 전혀 없는데서 드러나듯 잘못된 과거를 재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계속 피해가는 한, 진정한 친선관계 증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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