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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9.04 16:47 수정 : 2010.09.04 16:47

서울행정법원은 그제 금성출판사의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교육과학기술부의 수정 명령은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 등이 교과부를 상대로 낸 ‘수정 명령 취소’ 청구소송에서, 교과부의 수정 요구는 2002년 검정처분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것이라며 원고 쪽 손을 들어줬다. 검정 때와 마찬가지로 ‘교과용도서심의회’(심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함에도 그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의 가장 큰 의미는 심의회의 심의를 거친 교과서 내용을 교과부가 새로운 심의 없이 임의로 변경할 수 있게 허용하면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점이다. 재판부는 심의라는 절차적인 통제장치가 국가의 전면적 통제를 인정하는 국정체제와 검인정체제를 구별짓는 요소라고 봤다.

사실 역사교과서가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바뀐 것은 국가가 그 내용을 전면 통제하는 국정체제로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구현하거나 사회의 여러 가치를 폭넓게 반영하기 어렵다는 인식에서였다. 많은 나라에선 검인정 체제조차 교육의 자율성을 해친다고 보고 자율발행제를 택하고 있으며, 스웨덴 등 일부 나라에선 교사들이 현장에서 만든 교과서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교과서포럼 등 뉴라이트의 이념공세를 기화로 교과부가 적법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금성교과서에 대한 수정지시를 강제한 것은 사실상 국정체제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이번 판결은 그 시대착오적인 행태에 제동을 건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출판사와 저자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저작인격권 재판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저자의 동의 없이 교과부의 수정명령을 이행한 출판사의 행위가 저자의 인격권을 침해했는가를 다투는 재판에서 1·2심은 엇갈린 판결을 내놓았다. 수정명령 자체의 하자가 확인된 마당이니 앞으로 대법원이 어떤 판결을 할지 관심거리다.

교과부는 이번 판결에 즉각 항소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교과부의 독선적인 업무행태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이는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사태를 빚은 근본원인을 살피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경책을 삼아야 한다. 이웃 일본 등에서는 수정 범위와 방법, 절차까지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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