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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상당 규모, 적기’ 쌀 지원으로 남북관계 풀어야 |
북쪽 조선적십자회가 수해와 관련해 쌀과 중장비, 시멘트 등의 지원을 요청하는 통지문을 지난 4일 남쪽 대한적십자사 앞으로 보내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북쪽은 지난달 8일 동해에서 나포한 남쪽 어선 대승호를 어제 돌려보냈다. 남북관계를 풀려는 북쪽의 의도가 짙게 느껴진다. 정부는 이런 분위기를 적극 키워가길 바란다.
지금 남북관계 개선에 꼭 필요한 것이 대북 쌀 지원이다. 북쪽의 흉작과 수해를 고려할 때 지원 규모는 상당한 수준이어야 한다. 민간에만 맡기지 말고 반드시 정부가 나서야 할 까닭이다. 북쪽의 이번 요청에 대한 정부 태도도 부정적이지 않다. 정부는 검토중이라고 하고 있으며, 이명박 대통령도 어제 “(남북관계를) 적절히 해나가려 한다”고 했다. 한나라당과 민주평통 등 여권 안에서도 쌀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전체적인 대북정책 기조는 여전히 압박론이 중심이다. 쌀 지원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대한적십자사가 애초 제안한 ‘수해에 대한 긴급지원으로 100억원 규모 이내’로 논의를 제한하거나 기존 대북 대응 원칙을 강조하는 모습이 바로 그렇다. 북쪽의 지원 요청 사실을 며칠간 감춘 점도 미심쩍다. 쌀 지원은 북쪽 주민 다수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충분한 인도적 지원 효과를 거두고 남북관계 개선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100억원 이내로는 기껏해야 수천톤에 그친다. 이미 올봄부터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쪽에 실질적 도움이 되려면 이 정도로는 안 된다. 과거에는 연간 수십만톤씩 쌀을 지원했다.
북쪽도 전향적으로 호응해야 마땅하다. 우선 분배의 투명성을 높이고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데 성실하게 협력해야 한다. 아울러 외부 지원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개혁·개방에 필요한 조처들을 취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북쪽은 마침 44년 만에 노동당 대표자회를 곧 연다. 이 자리에서 지배체제 재편 외에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개혁·개방 방안들이 논의되길 기대한다.
남북관계는 지난 2년 반 사이에 나빠질 대로 나빠졌다. 상대의 굴복을 요구하며 기싸움만 해서는 아무것도 풀리지 않는다. 이제 반전의 계기가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쌀 지원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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