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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란 제재, 근거도 절차적 정당성도 취약하다 |
정부가 어제 유엔 안보리의 핵 관련 결의 이행을 내세워 이란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금융·무역·에너지·수송·여행 등 사실상 모든 분야에 걸쳐 한-이란 교류를 단절하는 수준의 강도 높은 조처들이 담겼다. 외국에 대한 제재 참여는 국제관계와 국내법적 근거 등을 두루 고려한 가운데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의 이번 결정은 배경과 절차의 정당성에서 많은 의문을 남긴다.
무엇보다 이번 제재는 미국한테 일방적으로 끌려다닌 결과라는 인상이 짙다. 예컨대 금융제재와 관련해 정부는 애초 40개 단체와 1명의 개인만을 고려하던 것을, 이번에 멜라트은행을 포함한 102개 단체와 24명의 개인으로까지 대상을 크게 확대했다. 애초 유엔 안보리 결의 1929호에 따른 의무사항만 이행하겠다고 하다가 원칙을 바꾼 것이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유엔 안보리 결의에서 석유와 천연가스 관련 규제가 빠지자 독자 제재안을 만들어 우리나라 등 우방국의 참여를 요구해왔다. 이런 식으로 미국 요구만 좇아서는 이란의 반발을 부르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국제적 평판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제재 조처를 발표하면서 관계부처 규정 개정, 법령 해석·운용, 가이드라인 신설 등의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제재를 먼저 결정하고 해당되는 국내법적 절차를 나중에 마련해 나가겠다는 뜻이다. 관계 법령도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제재를 먼저 결정했음을 자인한 것이다.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도 갖추지 못하고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꼴사납다.
정부는 이번 제재가 유엔 안보리 결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조처의 핵심인 금융제재는 안보리 결의를 훨씬 넘어선다. 특히 외환거래법상의 보고 의무 위반을 이유로 멜라트은행에 영업정지를 하도록 한 것도 전례가 없을뿐더러 상식 밖이다. 문제가 된 것은 국내 은행이라면 경고로 그칠 경미한 일이었다. 금융거래의 특성을 고려할 때 멜라트은행은 사실상 폐쇄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국내외 금융관행에 크게 어긋나는 처사다.
또 안보리 제재가 ‘핵확산 민감 활동이나 핵무기 운반체계 개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시행되는 데 반해, 이번에 발표된 금융거래 사전허가제 도입, 기존 코레스(환거래) 관계 종료 및 신설 금지, 신규지점 개설 금지 등은 이와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적용된다. 아울러 안보리 결의에서 권고사항이던 것을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했다. 허가받지 않은 대부분의 금융거래를 사실상 중단하도록 한 셈이다.
이렇게까지 금융제재에 나설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란의 강력한 반발은 불가피하다. 이란과 거래하는 국내 기업들의 피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런 기업의 피해를 보상해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게다가 개방경제를 지향하는 국가로서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과 관련이 없는 모든 금융거래까지 무차별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장기적으로 나라의 신뢰도까지 떨어뜨릴 것이다. 정당성이 취약한데다 득보다 실이 훨씬 큰 이런 제재를 왜 했는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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