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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졸속 추진으로 꼴사납게 됐지만 행시 개혁은 필요하다 |
정부와 한나라당이 5급 공무원의 50%를 외부 전문가로 충원하겠다던 행정고시 개편안을 백지화했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편법 특채 소동을 계기로 공정성 논란이 일자 개편안을 원점으로 되돌린 것이다. 편법 특채도 문제지만 공무원 인사제도에서 근간이 돼온 행시의 개편안을 한달 만에 없던 일로 함으로써 정책 신뢰성은 땅에 떨어지게 됐다. 50년 만에 대대적으로 수술을 한다던 행시 개편안이 이렇게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을 보면 정부의 정책 추진 역량 자체가 의심스럽다.
현재 5급 공무원 채용 방식은 지난해 기준으로 행시가 77%, 특채가 23%로 돼 있다. 정부는 이 비율을 2015년까지 5 대 5로 맞추겠다고 했다가 백지화하고 특채 비율을 40% 이내로 유지하기로 했다. 대신 부처별로 이뤄져온 특채를 행정안전부가 채용박람회 형식으로 한데 묶어 시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특채 비율을 줄인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채용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열쇠다. 행안부가 일괄 시행한다 해도 특채는 워낙 소규모로, 수시로 실시되는 만큼 이번과 비슷한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일시적인 여론무마용 대책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행시 개편안 전체를 원점으로 되돌린 것도 섣부르다. 지금 상황에서 행시 선발을 줄이면 특권층 자녀들의 채용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시 개혁 필요성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제대로 수정·보완하면 될 일이다. 고위 관료의 배출 통로였던 행시 제도는 고시 출신들이 자기만의 성벽을 쌓아 비고시 출신이나 외부 영입 전문가들을 배제하는 장벽이 돼왔다. 외부 영입 전문가들이 2~3년을 못 버티고 떠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적성과 능력 위주로 해야 할 공무원 인사를 기수·서열·인맥 중심으로 이뤄지게 만드는 데도 큰 몫을 했다. 어떤 식으로든 행시 제도의 개편은 필요하다.
정부는 일단 현행 체제를 유지하면서 이름만 행시에서 5급 공무원 공채 시험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제 기존의 폐해를 없앨 수 있는 대안을 치밀하게 검토해가기 바란다. 갑자기 획기적인 개혁안이라고 발표했다가 상황이 안 좋아지면 백지화하는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전문가와 국민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해 바람직한 개혁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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