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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쌀 조기 관세화 논란 마무리지어야 한다 |
정부가 추진해온 내년도 쌀 조기 관세화(쌀 시장 개방)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내년부터 쌀 조기 관세화를 하려면 이달 말까지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하도록 돼 있으나 정부와 농민단체의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한해 동안 말만 무성했지 아무 결론 없이 지지부진한 모양새다.
정부는 조기 관세화를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어제 한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해 조기 관세화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물론 농민단체들과의 합의를 전제조건으로 달았다. 조기 관세화는 일정한 관세만 지급하고 쌀을 자유롭게 수입하게 하는 것으로 사실상 쌀 시장 개방을 의미한다. 정부는 지금까지 개방을 유보하는 대가로 의무수입물량을 꾸준히 늘려왔다. 올해는 32만7천t이고 2014년까지 40만7천t으로 늘어난다. 조기 관세화를 하면 이 물량이 늘지 않아 8만t의 수입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산술적인 계산만으로는 일리가 있다. 과거에는 국내 쌀값이 국제 쌀값의 4~5배였으나 최근 2배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따라서 적절한 관세를 부과하면 실질적으로 수입을 차단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관세화를 해놓은 상태에서 국제 쌀값이 폭락하면 많은 수입쌀이 밀려들어 국내 농가가 치명적인 피해를 보게 된다. 환율 변동에 따라 쌀값이 춤출 가능성도 있다. 농가 소득보전 대책도 흔들리게 된다. 관세화를 위해서는 확실한 농가 보호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최근 쌀값 폭락 대책으로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연말까지 ‘쌀산업 발전 5개년 종합계획’을 만들기로 했다. 구조적인 공급 과잉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간 32만t을 넘는 의무수입물량 처리 방침 없이 쌀 수급 장기계획을 마련할 수 없다. 5개년 계획을 마련할 때 조기 관세화 여부도 결론을 내야 한다는 얘기다. 조기 관세화를 한다면 그 대비책은 무엇인지, 조기 관세화를 안 한다면 늘어나는 의무수입물량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명확한 계획이 필요하다.
최근의 쌀값 폭락 사태를 살펴볼 때 이 문제를 더 이상 뒤로 미룰 수는 없는 상황이다. 잘못하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게 된다. 정부가 책임 있는 자세로 논란을 마무리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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