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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6자회담과 남북관계의 진전을 꺼리는 정부 |
한반도 정세에서 새로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으나 우리 정부는 여전히 소극적이다. 6자회담 참가국 가운데 정세 변화에 가장 둔감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이런 완고한 태도가 한반도 관련 사안들의 실질적 진전을 막고 우리나라의 역할을 크게 위축시킬까봐 우려된다.
대한적십자사는 어제 북한에 쌀 5천t 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북쪽에 필요한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과거 쌀 지원 규모와 비교해도 턱없이 작다. 정부는 이번 지원을 ‘수해 대처용’으로 규정하고 ‘대규모 쌀 지원을 하려면 북한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는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풀려는 자세가 아니다. 인도적 지원의 기본인 쌀에 이렇게 조건을 달아서는 남북관계의 질적 개선이 어렵다. 2000년에서 2007년까지 해마다 30만t 이상(2006년 10만t)의 쌀을 북쪽에 지원해온 것에 비춰봐도 지원 규모가 10만t 이상은 돼야 한다. 앞으로 새로운 지원 발표가 있기를 기대한다.
정부는 관련국들의 6자회담 재개 분위기에 제동을 거는 듯한 모습까지 보인다. 방한중인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어제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한·중·일 순방은 우다웨이 중국 한반도사무 특별대표의 한·미·일 순방에 이은 것으로, 6자회담 재개로 향하는 중요한 움직임이다. 하지만 정부는 압박 위주 대북 강경정책의 지속을 미국 쪽에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겉으로는 우리 정부에 동조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중국과 회담 재개 밑그림을 그릴 가능성이 있다.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지난 9일 6자회담 재개 전망을 묻는 질문에 “어떤 진전이 있기 위해서는 남북한 사이에 모종의 화해조처가 있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 직후 북쪽은 남쪽에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했다. 미국과 북쪽이 남쪽을 제쳐놓고 주고받기식 대응을 한 것이다. 우리가 남북관계와 6자회담에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면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지금 북쪽이 남북관계에서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는 데는 대미 관계 개선 의지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강경기조 대북정책은 이미 한계를 드러냈으나 정부는 이를 인정하길 꺼린다. 그러다 보니 각종 현안에서 끌려가는 식의 대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제 정책 전환을 분명히 하고 현안 해결에 적극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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