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견강부회 대북 강경론으로 자승자박하려는가 |
여권 핵심 인사들이 느닷없이 ‘북한이 전쟁에 대비해 비축한 쌀이 100만t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 16일 한나라당의 김무성 원내대표가 말을 꺼낸 뒤 안상수 대표와 정부 당국자도 같은 발언을 했다. 새로운 대북 강경론을 조성하려고 함께 나서는 모양새다.
북쪽 군량미 규모가 나라 안팎에서 공식 언급된 적은 이전까지 없었다. 장막이 쳐진 북쪽 관련 정보 가운데서도 핵심 군사기밀이어서 누구도 정확하게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달 상순 열릴 예정이던 노동당 대표자회가 왜 연기됐는지도 모르는 게 우리 정부의 정보역량이다. 그럼에도 별다른 근거도 대지 않은 채 군량미 100만t설을 유포하는 데는 대북 쌀 지원 확대 요구를 봉쇄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정부 정책의 공신력만 떨어뜨릴 뿐이다.
북쪽에 지원하는 쌀은 도정을 해서 보내게 된다. 따라서 길어야 1년 이상 보관하기가 어렵다. 물론 북쪽이 이 기간에 남쪽 쌀 일부를 군량미로 비축하고 묵은쌀을 주민들에게 내놓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대북 지원 물자가 분배되는 과정의 투명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까닭이다. 그렇더라도 이것이 인도적 지원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과거의 쌀 지원은 분명히 북쪽 주민들의 고통을 덜고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북쪽에 실질적 도움이 될 규모로 쌀을 지원하면서 필요한 것을 함께 요구하는 게 올바른 태도다.
정부는 지금 천안함 사건 책임 문제를 남북관계와 6자회담에 두루 연계시키고 있다. 하지만 천안함 문제는 쉽게 해법이 나올 수가 없다. 정부는 천안함 침몰이 북쪽 소행이라고 하면서도 이를 북쪽이 인정하도록 만들 수 있는 객관적인 절차는 소홀히 했다. 게다가 이제는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천안함 문제로 한반도·동북아 관련 현안이 방해받지 않기를 바란다. 이런 상황에서 천안함 문제에 매몰돼서는 오히려 현안 논의에서 소외되기가 쉽다. 미국이 대화를 강화하는 새 대북 전략을 마련중이라는 보도가 잇따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북한은 후진적이고 문제가 많은 나라지만 그것이 대북 강경론을 합리화하지는 않는다. 특히 견강부회 식의 주장으로 대북 적대의식을 확산시켜 기존 강경정책을 밀고나가려 해서는 자승자박의 결과를 낳기가 쉽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