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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21 17:25 수정 : 2005.06.21 17:25

타향살이 20년 동안 나는 아홉 번 이사를 했다. 지금은 경기도 일산 새도시의 22평짜리 아파트에 전세 들어 산다. 자랑스러울 것 없는 이력을 먼저 밝히는 것은 사람의 생각이 자신의 처지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못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부동산 투기 해법을 둘러싸고 나온 수많은 주장들을 보면서 나는 몇 번이나 소름이 끼쳤다. 중산층과 서민의 한숨을 핑계로 투기꾼을 도우려는 이들이 적지 않은 까닭이다.

나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임대료다. 주택정책은 월세·전세금을 안정시키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시근로자 가구의 자가 보유율은 60%를 넘어섰다. 지금이라도 다양한 형태의 공공 임대주택을 늘리는 데 집중하면 된다. 개발이익을 없앤 공공 임대주택은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싸다. 그것이 전반적인 임대료 수준을 계속 끌어내릴 것이다. 판교를 비롯해 앞으로 조성할 모든 새도시를 그렇게 개발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물론 이유가 있다. 건설업자들한테서 나올 떡고물이 없어지지.

그까짓거 ~ 집 없으면 어떤가! 하고 말하면 사람들은 내게 철없다고 한다. 솔직히 나도 내집에서 살고 싶다. 저축으로 인한 이자소득보다 부동산 시세차익이 컸던 역사를 나도 안다. 내 집이 있다면, 집값이 들썩거릴 때마다 ‘소다를 잔뜩 집어넣은 밀가루 반죽처럼’ 내 가슴도 부풀어오를 것이다. 내 고민을 해결해줄 방법은 보유과세를 대폭 강화하는 것이다. 집을 빌려 살든, 내 집에 살든 기회비용에 별 차이가 없다면, 구태여 집을 살 사람은 없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정말 실패했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국민은행 조사를 보면, 10·29 대책 발표 전인 2003년 9월 이후 지난 5월까지 전국 아파트 전세금은 2.2%, 서울 강남 아파트 전세금은 5.6% 떨어졌다. 임대료는 확실히 안정됐다. 문제는 올 들어 슬슬 되오르는 매맷값이다. 10·29 대책 이후로도 전국 아파트값은 2.8%, 서울은 3.3%, 서울 강남의 아파트는 5.0%씩 올랐다.

강남권을 중심으로 한 아파트값 상승세가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가고 그것이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강남 아파트값은 1월부터 5월까지 평균 5.8% 올랐는데, 전세금은 1.61% 오르는 데 그쳤다. 이는 최근의 집값 상승세가 공급 부족 때문이 아니며, 결국 꺼질 수밖에 없는 거품임을 보여준다. 거품이 터지지 않는 것은 나보다 더 바보가 있어 더 비싼 값에 집을 사줄 것이라는 기대가 살아 있어서다. 하지만, 거래가 별로 없는 것은 투기의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으나 숨은 가빠지고 있음을 뜻한다.

이런 상황에서 집값이 덜 올라 배아파하는 이들을 위한 정책을 쓰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하다. 그런 정책이란 보유세 강화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공급 확대가 해법이라며 투기를 부채질할 개발안을 내놓는 것이다. 그것은 투기의 목을 힘겹게 조르고 있는 손을 떼라는 것이다. 새로운 바보를 끌어들여 투기꾼들이 빠져나갈 기회를 주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나는 조금도 배아프지 않다.

사실 10·29 대책의 집행 과정엔 큰 흠이 있었다. 강남권의 값비싼 아파트에 대해서는 보유세 강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중산층과 서민을 정말 걱정한다면, 지금 고쳐야 할 게 바로 그것이다. ‘건설경기 연착륙’이라는 구호는 실책이 아니라 흉악한 것이었다. 위험을 각오한 투기꾼한테 망할 기회를 빼앗지 말라. 새 바보가 나오는 것을 막는 것, 그것이 대책이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k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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